『닷새를 굶어도 풍잠 멋으로 굶는다』는 속담이 있다. 풍잠은 강건의 앞 이마 쪽에 단 반달모양의 장식품, 같잖은 체면 때문에 어려움을 무릅쓴다는 뜻으로 쓰인다. ◆북한의 식량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은 벌써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더구나 4년이나 내리 흉작. 그래서 귀순자 가운데는 『북한에서는 날마다 세끼니 걱정을 하는데 남한에서는 주말이면 놀러갈 걱정을 한다』고 대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도 남한의 남아도는 쌀을 받기는 싫다. 아니,받고는 싶다. 하지만 「풍잠 멋」도 모르는 그 「체면」에 걸린다. 그 체면은 체제의 권위와 곧장 연결된다. 그래서 안받는 게 아니라 못 받아 온다. ◆생각하자면 그건 자업자득이다. 남한 주민은 헐벗고 굶주리며 거지가 득실거린다고 가르쳐 온 그들이 아닌가. 그런 남한에서 쌀을 받았다는 사실을 주민들에게 납득시킬 수가 없다. 84년의 수해 때 우리는 그들의 쌀을 받았다. 감수는 되었으나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할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받았던 것은 대화의 진행에 윤활유를 치자는 뜻이었다. 그게 바로 공개사회의 자신감. 그들은 그걸 못한다. 허위선전 들통날 일이 겁나는 것이다 ◆그래서 주는 쪽에서 오히려 조심을 해야 한다. 그들의 자존심과 체면 안 깎이게 하면서 주어야 한다는 기묘한 논리이다. 그 동안 한 동업지와 기독교 운동본부가 나서서 모은 「사랑의 쌀」 1만가마가 북한으로 보내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 또한 비밀리에 접촉하여 받게 해놓고도 쉬쉬 해왔던 것. 이 또한 비밀리에 접촉하여 받게 해 놓고도 쉬쉬 해왔던 터. 지난 7월에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일본의 신문이 그 낌새를 채고 보도하면서 국내신문에도 활자화한다. ◆도연명은 오두미(녹봉)를 위해 허리를 꺾기 싫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면서 「귀거래사」를 읊는다. 도연명의 체면세우기는 그 한 가족의 어려움으로 끝나지만 북한의 경우는 수많은 주민의 어려움으로 이어지는 것 아닌가. 허리를 꺾으라는 것도 아니다. 당당하게 주고받는 관계를 어서 트자는 말이다.
1990-12-2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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