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 방소의 정치·문화사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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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0-12-04 00:00
입력 1990-12-04 00:00
오는 12월 중순 있을 노태우 대통령의 소련 방문은 우리나라 국가원수로서는 처음 이루어지는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6월 샌프란시스코에서의 한소 정상회담이 10월1일의 양국 국교정상화로 이어졌다면 이번 노 대통령의 방소 및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의 회담은 양국간의 실질관계를 여는 또 하나의 역사적 계기가 될 것이다.
노 대통령의 방소를 계기로 한소 양국간 정치·경제·과학분야 등의 협력문제와 재소 한인문제 및 앞으로의 양국관계에 대한 전망 등을 김열규 서강대 교수와 최평길 연세대 교수에게 들어본다.<편집자주>
【대담=김열규 서강대 교수·최평길 연세대 교수】 ▲최평길 교수=노태우 대통령의 이번 소련방문은 지난 6월4일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10월1일 역사적인 양국 국교정상화 등으로 비롯된 양국간 공식적인 관계개선을 대통령이 직접 최종 마무리 짓는다는 역사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봅니다. 구 한말 당시 러시아와의 관계 이후 80여 년 동안 단절된 양국간 역사를 다시 정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80년 단절의 재봉합
▲김열규 교수=한소 관계는 1884년 당시 제정 러시아와 조로통상조약을 맺음으로써 시작된 이후 선린우호관계를 유지했습니다. 6·25 등을 겪으면서 양국관계는 단절됐지만 한소 수교와 이번 노 대통령의 방소는 역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양국관계의 재봉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소련의 국가원수가 한국의 국가원수를 초청했다는 것은 앞으로 양국관계의 순탄한 정상적 관계를 의미한다고 봅니다.
▲최 교수=남북한 분단은 냉전시대의 희생물로 탄생한 것입니다. 노 대통령의 소련 방문은 남북통일의 외부적 변수로 작용,통일을 앞당기는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남북 분단의 원인제공자의 하나인 소련이 통일을 위해서도 근본적인 영향을 미쳐야 할 것입니다. 이번 모스크바 정상회담에서는 노고르바초프 대통령간 남북통일을 위한 공동 코뮈니케가 있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이같은 모스크바 공동선언이 내년초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방한시 서울선언으로 발전,남북통일에 커다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김 교수=장기적인 측면에서는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겠지만 단기적으로는 북한을 위축시킬 수도 있습니다.
북한은 동구국가 등이 사회주의국가 완성에 실패한 이유가 전략의 실패라고 보고 있는 듯 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사회주의 체제의 마지막 보루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한 학자들을 만나면 소련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대북 영향 고려해야”
▲최 교수=노 대통령의 방소 결과를 낳은 6공 북방정책은 탈 냉전이라는 국제정세변화와 함께 이념체제 측면에서 동구와 극동이 근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앞으로 북한도 이러한 한반도 정세변화에 따라 합리적인 방향으로 기존정책을 수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군사안보적 차원에서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시도해 왔지만 경제적인 면에서도 동북아에서의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일본에 비해 대소 경제관계 선취권을 획득했다고 분석됩니다. 따라서 내년 3월 고르바초프가이후(해부) 일 총리회담에 앞선 노고르바초프 정상회담은 일·소 정상회담의 의미를 희석시켰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김 교수=한반도를 포함한 시베리아 문화권의 주도권을 우리가 쥐어야 합니다. 이번 한소 정상회담은 아시아를 포함한 우랄 알타이 산맥의 동서를 잇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3국시대 신라문화는 범시베리아 문화의 완성체였습니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방소는 시베리아내의 우리 문화를 발굴하는 커다란 전기가 될 수 있다고 관측됩니다. 즉 문화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습니다.
▲최 교수=소련의 자연과학 및 기초수학분야의 권위는 세계적입니다. 장기적으로 소련의 신소재개발을 비롯한 첨단기술을 우리 산업과 접목,응용하면 실질적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김 교수=오늘날 세계인문과학의 어떤 부분은 그 근원지가 소련인 것이 있습니다. 소련문학에서의 구조주의 ·기호주의도 서구문학에 큰 영향을 줬습니다. 소련이 경제적 으로 부유하지는 못하지만 문학·음악 등에 있어서는 세계 문학·음악 등에서 한몫을 해내고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문화학술의 교류야말로 적극 추진되어야 할 과제입니다.
▲최 교수=노 대통령은 모스크바에서 옐친 등과 같은 이른바 「지방분권론자」들도 포용해야 합니다. 소련연방내 15개 공화국의 자치정부를 주장하는 옐친 러시아공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소련 전국민의 90% 이상입니다.
▲김 교수=노 대통령의 방소는 한소관계 정립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지만 6·25 및 한반도의 분단에 소련이 관련되어 있고 교민들의 강제 이주 및 KAL기격추사건 등의 앙금도 남아 있어,이 문제들의 처리도 중요합니다.
○「KAL격추」 짚어야
한반도는 동서대결의 최첨병기지로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르게 된 것이기 때문에 소련은 이에 대한 응분의 정신적 배상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반도의 안정에 일조를 해야 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한국정부로서도 노 대통령의 방소를 맞아 이 점을 소련정부에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 교수=소련은 현재 심각한 경제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따라서 소련은 노 대통령의 방소기간 동안 경제원조 및 경제문제에 대한 협력을 촉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사실 소련은 21세기의 아시아·태평양시대를 맞아 아·태 경협에 참여하려고 하고 있으며 한국에 경협을 기대할 정도로 심각한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한국정부는 좌초된 경제를 희생시키려는 소련에 대해 진지한 자세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소,경협 촉구할 듯
소련은 한국정부에 대해 생필품수출 및 공동투자,합작 현금차관 등을 요구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은 소련이 획기적으로 국방비를 감축할 때 대소 원조를 한다고 밝히고 있고 일본도 북방 4개 도서 문제로 정부차원에서 대소 경협에 거부감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정부는 전통적인 우방국가들인 미일과 보조를 유지해야 할 입장에 놓여있는 한편 대소 경제외교도 풀어야 할 형편이기 때문에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한국정부의 현명한 경제외교가 절실히 요청되고 있습니다.
양국의 경제관계는 우리가 소련에 생필품을수출하고 소련으로부터 이에 대한 것을 물품으로 받는 구상무역의 형태를 띨것 같습니다.
소련은 한국으로부터 물품을 받은 후 일정기간이 경과한 뒤 다른 물품을 제공하는 연불수출을 원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한국정부는 이 경우 즉각 현금으로 될 수 있는 금을 비롯한 원유·비철금속 등을 소련으로부터 받을 수 있도록 강력히 요구해야 할 것입니다.
한소경협이 진전되면 중기적으로 양국이 신소재개발 등을 통해 빠른 시일안에 상품화가 가능한 것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장기적으로는 대형 프로젝트에 컨소시엄 형태로 한국이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노 대통령은 따라서 한국이 빠른 시일 안에 대응할 수 있는 행정협정을 체결해야 합니다. 또한 대외협력기금을 엄격히 관리하여 북방진출에 나서고 있는 기업들이 부당이익을 볼 수 없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하겠습니다.
▲김 교수=소련내에는 40만∼50만명의 교민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 교민의 시각은 사실 친북한 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 동안 한소관계가 단절된 상태였기에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재소 한인들은 우리 문화와 소련의 문화를 조화롭게 접목시켜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봅니다. 교포들은 또한 그들이 속한 공화국내에서 경제·문화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한반도 주위의 다른 4강인 중국·미국·일본내 교포들의 위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들은 이들을 동정어린 눈으로만 보아서는 안됩니다.
정부는 이들이 콜 호스에서 생산하는 사탕수수와 콩 등을 모국에 수출하기를 원하고 있는 등 경제유대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직시하고 적절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한국 정부는 교포교육문제에도 세심한 노력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재소 한인들은 우리들로부터 멀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앙아에 영사관을”
▲최 교수=중앙아시아지역에 총 영사관을 설치하는 것도 검토되어야 하며 한국의 기업이 진출할 경우 재소 한인들을 고용,그들의 수입을 높여 주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김 교수=노 대통령의 방소 기간중 교민대책이 제기되었으면 합니다. 재소 한인들이 현재 있는 공화국내에서 소수민족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전에 교포들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문제를 결정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가령 지난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지역으로 강제 이주된 교민들이 원래의 위치로 돌아오는 것도 방법일 수 있으며 교포들이 많이 사는 곳이 자치공화국이 되도록 소련정부에 요청하는 등 교민의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는 정치적 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랍직합니다.<정리=곽태헌·박정현 기자>
1990-12-04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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