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들의 「무력증」(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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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0-12-01 00:00
입력 1990-12-01 00:00
우리 사회는 근로자들이 일할 맛이 나지 않는 사회가 되어가려는 모양이다. 근로자의 31%나 되는 사람들이 무력감에 빠져 있고 기회만 있으면 직장을 옮길 생각(81%)을 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것도 직장으로 보아 비교우위에 속하는 집단의 근로자가 더 심한 증상을 보이고 있다. 중소기업의 근로자보다 대기업의 근로자가 더욱 심하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또한 업종도 전기·전자·기계금속 등 전문숙련도가 높은 수출주력 업종에서 근로의욕의 감퇴현상이 더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매우 우울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일할 의욕이 떨어지면 능률이 오르지 않고 불량률이 높아질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 상품이 해외 수출시장에서 불량률이 높아 나날이 신용을 잃어가는 원인이 되고 있는 현상을 이 조사결과는 입증하고 있다.

근로자들의 의욕이 이렇게 감퇴되는 데는 물가불안과 사회전반의 투기심리가 주는 무력감이 원인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압도적(62%)으로 많다. 말하자면 『뼈가 빠지게 일해보았자 좋은 장래를 설계할 만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관적인 생각이 근로자들 세계에 팽배해 있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사회의 정신적 불건강이 경제발전을 지체시키는 직접원인이라는 것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투기심리를 진정시킬 정책이나 물가안정정책을 맡은 당국의 관리능력에 많은 책임이 있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 조사에서 또 한 가지 상당히 의미있는 조사결과를 발견하게 된다. 응답 대상의 3명 중 1명 꼴이 『근로자세가 태만해졌다』는 사실을 자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열심히 일하는 것의 가치보다는 일확천금의 투기에 가담하고 싶은 욕구의 유혹에 넘어간 사람이 더욱 많은 것이다. 한푼 두푼을 땀흘려 버는 일이 시답잖아 보이기 시작하면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리게 된다. 많은 근로자가 이런 증세에 감염되어 있다는 사실이 우울하다.

마치 모든 병인이 사회에 있으므로 책임도 사회가 져주어야 한다는 듯한 논리이지만 사실은 이 병리에서 낫는 것은 본인의 의지에 더 많이 달려 있다.

「투기」만 해도 그것으로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는 사람은 지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숱한 사람들이 「그랬다더라」는 허망한 소문에 들떠 우왕좌왕하다가 실패를 하고 허송세월을 하게 마련이다. 또한 마음이 황폐해지고 가족이 파괴되는 부작용도 비일비재하게 겪는다.



특히 크고 작은 기업으로 성공한 창업주들을 보면 예외없이 근면하고 성실한 근로자생활을 근본으로 하여 사업을 일으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래에 대한 희망」이 투기에 의해 보장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의욕상실」 증세에 걸리면 걸린 당사자가 1차적으로 피해를 보는 것일 뿐이다.

또한 근로자의 무력증적인 자기포기가 임금보수의 개선이나 근로내용의 변화보다는 기업내의 복지,인격적 대우,원활한 대화소통에 더 많이 있다는 응답에 대해서는 기업측도,그 감독기관도 많은 각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일할 의욕이 떨어진 근로자의 문제는 기업에 가장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요컨대 마음만 먹으면 고칠 수 있는 병리현상임을 다같이 자각하는 일이 시급하다.
1990-12-01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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