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ㆍ태에 「변화의 바람」 부는데… /정종욱 서울대교수(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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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0-09-22 00:00
입력 1990-09-22 00:00
○소,아ㆍ태 진출 적극 모색
이번 회의에서 가장 주목을 끈 것은 회의 첫날 행해진 셰바르드나제외무장관의 기조연설이었다. 셰바르드나제의 연설이 주목을 끌었던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그가 9월2일부터 이틀 동안 평양을 방문하고 바로 블라디보스토크회의에 참석했다는 사실이다. 한소 수교임박설 등 평양과 모스크바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들이 셰바르드나제와 북한 고위층 사이에 심각하게 논의되었을 것으로 추측되었기 때문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소련 외무의 움직임과 발언이 크게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둘째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셰바르드나제가 소련의 아시아 태평양지역에 대한 중대한 외교정책을 발표할 것이라는 보도가 회의 전에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소련의 아태정책은 단순한 탈냉전의 차원을 넘어 새로운 정치ㆍ겅제질서 형성을 위한 보다 적극적인 방향전환을 모색하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으며 여기에 관한 기본구도가 바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행해질 셰바르드나제외무의 기조연설에서 제시될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다자간협의 구성엔 냉담
실제로 셰바르드나제의 연설은 첫째 문제에 관해서는 원칙론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소련의 입장을 분명히했다. 소련은 한반도문제 해결에 있어 분단의 현실을 인정하고 나아가서 한반도에서 두개의 한국이 40년 이상의 오랜 시일에걸쳐 각기 배타적 주권을 행사해왔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이것은 한소 수교의 명분이기도 하지만 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북한이 남한의 현 정부를 인정하고 정부간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분단의 고통을 줄이고 궁극적으로는 평화공존에 입각한 통일에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통일을 위해서는 한반도에서 남북한간에 진정한 의미의 평화공존이 우선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주변국가들의 관계정상화는 물론 남북한간에도 정치적 관계가 회복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소련의 주장은 물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북한과 소련의 관계는 한소 관계가 정상화될 경우에도 단절하기 힘들 만큼 정치 군사 경제적으로 특수한 측면을 갖고 있다. 따라서 한소 관계정상화가 강행될 경우 한반도에는 북한이 그토록 반대해온 분단고착이 현실화된다는 게 평양측의 주장이었다. 셰바르드나제의 평양방문에서는 이러한 북한의 반대에 대한 소련의 단호한 입장이 전달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소련은 한소 수교문제 이외에도 북한이 받아들이기 힘든 새로운 몇가지 사실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북한이 소련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는 유가의 현실화와 경화지불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셰바르드나제를 맞는 북한의 태도가 대단히 비우호적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불라디보스토크회의에서 북한과 소련 참석자들간의 접촉이 눈에 띄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가급적이면 서로 접촉을 피하려는 어색한 모습에서 셰바르드나제의 평양방문의 분위기가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둘째 문제는 93년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아태지역 외무장관회의를 개최하자는 셰바르드나제의 제안으로 구체화되었다. 유럽의 안보협력회의(CSCE)를 아시아에서도 실현시켜보겠다는 게 고르바초프의 일관된 정책이었으며 이것이 역내 외무장관회의라는 형태로 이번에 나타난 것이다. 아시아지역에서 전후의 냉전 유산을 청산하고 나아가서 새로운 역내의 정치 경제 협력관계를 만들기 위해 다자간회의를 열자는 취지이다.
이 제안에 대한 회의참가국들의 반응은 일단 부정적인 것이었다. 새로운 아태 질서 형성에 있어 소련의 적극적인 역할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미국의 태도도 그러했지만 일본이나 동남아국가들의 반응 역시 미지근했다. 소련을 아태지역국가로 받아들이기에는 아직도 냉전의 응어리가 심각하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결국 블라디보스토크회의는 아태지역에서 냉전 청산과 새 질서 구축의 중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그 구체적 내용이나 절차에 관해서는 다양한 이견들이 노정된 채 92년에 열릴 제3차 블라디보스토크회의때까지 해결을 연기하는 결과를 낳았다. 유럽에서의 변화가 아시아에로 파급되어 구체적 성과로 자리잡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넘어야 할 장벽들이 적지 않음을 다시한번 시인한 것이다.
○남북관계 실질성과 시급
아태지역에서 새로운 국제질서가 창출되기 전에 한반도문제에 대한 실질적 성과를 이룩하는 것만이 한반도문제가 역내의 다른 문제들에 묻혀 예기하지 않은 방향으로 해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길임을 확인하면서 아태지역에서 소련이 갖고 있는 막강한군사력을 상징하는 군항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났다. 2년 후 다시 이 항구도시를 찾을 때쯤에는 한반도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생각하면서….<본사 논평위원>
1990-09-22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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