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언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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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0-09-15 00:00
입력 1990-09-15 00:00
물같이 유한 것이 없다. 물같이 순한 것도 없다. 모난 그릇에 담으면 모가나고 동근 그릇에 담으면 둥글어진다. 가두면 갇히고 터주면 흐른다. ◆물은 또 겸손하다. 스스로 낮은 데로 낮은 데로 찾아 흐른다. 찼을 때 비로소 넘친다. 노자가 최고의 선(상선)과 같다고 찬양했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만물에 혜택을 주면서도 뽐냄이 없고 다툼이 없이 낮은 데로 흐른다는 데서였다. 헤르만 헤세도 물의 덕을 찬양했던 사람. 「싯달다」(제2부)에서 그는 『물로부터 배우라』고 말한다. 『물은 생명의 소리,존재하는 것의 소리,영원히 생성하는 것의 소리…』라면서. ◆그렇지만 그것이 물의 모두는 아니다. 유순하고 약한 물이건만 강한 것에 이기기 때문이다. 노자는 물의 이점을 보았다. 강한 것을 이기는 것은 「철저한 유약」이라고 그는 말한다. 유 뒤에 숨은 물의 강. 그래서 『물은 배를 다니게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순자). 억세게 타는 불을 끈다. 갇혔다가 못견뎌 터지면 닥치는 대로 삼킨다. 부순다. 그러다가도 넓은 데로 가서 자유로워지면 다시 잔잔해진다. ◆우리도 이번에 그런 물의 생리를 겪고 확인했다. 한강 인도교 수위가 11.27m에 이르렀을 때의 그 「유약의 노기」가 준 외포. 얼마나 전전긍긍 했던가. 그리고 우리는 다시 그것이 휩쓸고 간 자국으로서의 잔핵을 본다. 『불난 끝은 있어도 물난 끝은 없다』는 그 황량해진 생채기를. 사람도 가축도 삼키고 집과 재산도 휩쓸고 지레 즐거워한 풍년에의 꿈까지 뭉개고 지나간 그 엄청난 힘을. 그게 「유순한」 물이었던가. ◆하지만 애당초 물에 의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그리고 미처 미치지 못한 사람의 의지가 자초한 재앙이었을 뿐이다. 이러고도 사람의 의지가 깨닫지를 못한다면 의지없는 물의 의지는 또다시 노기를 띨 수 있다.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한다는 겸양의 마음을 가르치는 이번 물난리이기도 하다.
1990-09-15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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