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만전에 새우등 터질라”… 몸살 앓는 요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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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0-09-14 00:00
입력 1990-09-14 00:00
◎강석진특파원이 본 「암만의 딜레마」/이라크ㆍ서방사이 중재노력 “별무성과”/봉쇄따라 인플레 심화… 경제파탄 직면/난민 45만 유입… 식량달려 뒷처리에 골머리

요르단의 수도 암만시의 가로수는 아카시아다. 잡목을 가로수로까지 격상시켜 준 것은 물론 황무지에서도 왕성하게 자라는 아카시아의 끈질긴 생명력 때문일 것이다.

중동위기가 오래 지속되면서 이 아카시아보다 더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해야 될 어려움을 요르단은 맞고 있다.

이라크와 세계여론 사이에 끼여 줄타기외교를 펼쳐야 하고 대 이라크 경제봉쇄로 인해 막대한 경제적 타격을 입고 있으며 수용능력을 넘는 난민을 감당해야 하는 하나같이 어려운 문제들이 요르단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

요르단의 국민들은 거의 압도적으로 이라크를 지지하는 편. 지난 5일 허드 영국 외무장관이 암만을 방문,기자회견을 가졌다. 회견 모두에 요르단 기자단은 서방세계가 이스라엘의 아랍영토 점령에는 관대하면서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에는 양팔을 걷어 붙이고 나서고 있다고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약간 뚱뚱한 기자대표가 허드 외무장관 앞에서 성명을 읽어 내려가자 박수가 요란하게 터져 나왔다.

9월8일 요르단의 전 외무장관ㆍ왕세자 법률고문ㆍ현직 언론인 등이 토론자로 참석한 「현 위기상황의 원인」이라는 세미나에서도 토론자들은 「무력침공을 정당화 시킬 수는 없지만」이라는 단서를 일단 내건 뒤에 쿠웨이트가 「사적으로 이라크의 일부분이라는 법적 뒷받침을 제시하는 한편 서방세계의 이중기준을 규탄해 마지 않았다.

요르단 정부로서는 국민들의 이라크지지 여론과 세계여론 사이에서 어렵게 행보중이다. 후세인왕은 일면 유엔의 경제제재에 동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국 유럽 이라크를 돌아다니면서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지 않도록」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으나 중재효과는 거의 거두지 못하고 있다.

요르단정부가 이처럼 곡예외교를 펼치는 것은 국민의 70∼80%가 팔레스타인계로서 이스라엘의 점령지 철수여론이 강력하고 사방에 강대국을 두고 있다는 점과 아울러 이번 사태로 자칫하면 경제가 파산될 우려가 높아지고 있기때문이다.

요르단은 최근 2∼3년간 80억달러에 달하는 외채와 두 자리를 넘는 인플레,20%에 달하는 실업률 등으로 고전해왔으며 최근에는 IMF(국제통화기금)의 권고로 재정긴축을 실시해왔다. 요르단경제의 유일한 활로는 대 이라크 경제협력이었는데 유엔의 대 이라크 경제봉쇄 결의로 말미암아 상황은 급전직하의 형국이 돼 버렸다.

요르단과 이라크는 지난 10년간 경제협력관계를 증진,거의 통합의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이라크는 요르단으로부터의 수입상품에 대해 15%의 가격경쟁력 제고효과가 있는 관세혜택을 주었다. 이라크는 또 요르단에 우호가격으로 석유를 공급,연 2억8천만달러를 간접지원해 왔다. 이에 따라 요르단 제조업분야에서 대 이라크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게 됐으며 전체 노동력의 3.7%가 이라크에 진출,외화를 벌어들였다. 여기에 노동인구의 8%에 달하는 쿠웨이트진출 인력,아카바항을 통한 대 이라크 운송업,이라크의 대 요르단 채무상환액 연 3억달러 등을 합치면 요르단은 경제봉쇄로 말미암아 44%의 실업률과 연 20억달러이상의 손실을 본다는 것이 요르단측의 분석이다.

기자가 아카바항을 취재했을때 부두에는 이집트 난민수송용 페리 2척만이 있었을 뿐 화물선은 단 한척도 없었고 부두 주변에는 화물트럭과 컨테이너들이 벌판을 메우다시피 놀고 있었다. 한산한 아카바항의 모습은 이웃한 이스라엘의 일라트항에 화물선들이 입항해 있는 모습과 좋은 대조를 이루었다.

요르단국민들이 서방세계가 자국에 대한 지원에는 인색하면서 경제봉쇄에 참여하라고 다그치는데 대해 분개하는 이유를 대번에 느낄 수 있을 만큼 적막한 분위기였다.

주요 외화수입원의 하나인 관광업에도 찬 서리가 내렸다. 요르단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관광지 페트라와 카라크성에도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어져 버렸다. 한창 관광철이어야 할 9월인데도 거의 모든 관광프로그램이 운영되지 못하고 있었다.

난민 뒤치닥거리는 요르단이 안고 있는 또 하나의 두통거리. 아시아계 난민들의 구호문제는 전세계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숙제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거의 요르단에 내맡겨져 있는 상태다.

요르단으로 입국한 난민의 숫자는 사태발발후 지금까지 줄잡아 45만. 이 가운데 아시아계 특히 인도계 난민들의 상당수가 본국으로 떠나지 못한 채 반거지가 돼 있다.

이라크와의 접경지역,암만교외,아카바항근처 등의 황무지위에 거의 노숙하다시피 지내고 있는 이들 난민의 숫자는 10만은 넘으리라고 추산되고 있다. 먹을 물ㆍ식량ㆍ의료진이 턱없이 모자란다. 지평선과 맞닿아 있는 빵 배급줄,물 한통에 수십개의 손이 달려들어 아우성치는 모습 등을 요르단 TV는 연일 비추고 있다.

유엔구호기구(UNRO)의 엠하메드 에시피조정관의 말처럼 요르단은 국제사회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한채 구호활동을 펴 왔지만 즉각적인 대규모의 외부지원없이 인구 3백만이 못되는 조그만 나라가 수십만의 난민을 구조하기는 역부족이다.

아직도 이라크와 쿠웨이트로부터 넘어올 제3국인 숫자가 1백만을 넘는다는 보도이고 보면 난민문제는 이번 중동사태가 낳은 가장 비극적 결과의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사우디와 쿠웨이트가 미군 주둔비로 수십억달러씩 내놓으면서도 난민구조에대해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것도 요르단 국민들에게는 적지않게 반감을 사고 있는 상태다.

기자가 요르단에 입국할 때 갖고 있었던 사우디신문을 공항에서 압수당한 것이나,쿠웨이트인들이 요르단에서 배겨나지 못하고 떠나고 있는 것,하산 요르단 왕세자가 전세계가 난민의 인간적 비극을 도외시하고 있다고 격렬하게 공개 비판한 것 등도 안팍 곱사등이 신세가 된 요르단이 보일 수 있는 반응이었다.<암만(요르단)>
1990-09-14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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