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3일 조기통독”으로 쾌속 항진/동독의회의 “통독결의”의미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기자
수정 1990-08-25 00:00
입력 1990-08-25 00:00
◎“동독경제 살리자”… 불화씻고 통합 확정/국제 공인ㆍ12월 전독총선으로 “대단원”

동서독의 완전통일이 눈앞에 다가왔다.

동독의회는 23일 새벽 2시(현지시간) 통독결의안을 가결,오는 10월3일을 40여년간에 걸친 동서독간 민족분단 상황을 극복하고 「하나의 국가」로 다시 태어나는 날로 선택했다.

지난해 10월 호네커 공산독재를 몰아내고 베를린장벽을 무너뜨린지 1년,그리고 지난 7월1일의 경제ㆍ사회통합 조치가 시행된지 3개월여만에 정치통합을 이룸으로써 동서독은 마침내 통일을 완수케 되는 것이다.

동독의회가 채택한 통독결의안은 서독연방헌법의 규정에 따라 통독절차를 밟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즉 연방헌법 제23조가 규정하고 있는 「독일영토를 구성하는 다른 지역」의 「연방가맹」 결정행위이며 동독측의 결정만으로 충분하다.

이에 따라 오는 10월3일부터 동독은 서독에 흡수통합됨으로써 정치ㆍ외교적으로 「국가」의 기능을 자연히 상실,완전 소멸하게 된다. 전세계 이목을 집중시켜온 통독작업은 그동안 하루 앞을 가늠해보기어려울 정도로 쾌속으로 진행돼왔다.

동구의 개혁ㆍ개방열기에 곁들여 지난해 5월부터 시작된 동독인들의 서독으로의 대탈주는 40년 공산독재의 아성을 밑으로부터 흔들어 놓았으며 때맞추어 불꽃을 댕긴 공산정권 반대시위는 10월에 이르러 전국으로 번져 드디어는 호네커를 몰아내고야 말았다.

이때부터 표면화되기 시작한 동서독 국민들의 통일열망은 분단의 상징물인 베를린장벽을 무너뜨리기에 이르렀으며 이어 지난 3월의 동독총선에서는 헬무트 콜 총리가 이끄는 서독 기민당과 함께 조속한 통일달성을 선거공약으로 내건 로타르 드 메지에르의 기민당에 표를 몰아 주었다.

이때부터 통일논의는 본격화되기 시작했으며 몇차례의 양독정상회담을 통해 지난달 1일에는 화폐통합을 주축으로 한 동서독 경제ㆍ사회통합 조치가 이루어졌으며 그로부터 채 두달도 안돼 완전통일을 의미하는 정치통합이 결정된 것이다.

이번 정치통합결정이 이루어지기 까지는 길지는 않지만 몇주째 동서독내의 정당들간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었다.

우선 양독정당들은 통일선언을 먼저 할 것이냐 아니면 전독총선을 앞서 치를 것이냐로 신경전을 벌여왔다. 양쪽의 집권당인 기민당은 선거를 먼저 치르고 그뒤 통합을 선언하자는 입장이었던데 비해 사민당을 중심으로한 야당세력은 정치통합뒤 총선을 치르자는 「선통일」 주장을 내세우며 동독연정에서의 탈퇴위협을 서슴지 않았다.

절차문제를 놓고 이같이 첨예한 대립을 보였던 것은 총선에서의 유리한 입장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계산 때문이었다.

이 문제에서 기민당측이 양보,「선통일」방안이 채택되자 이번에는 정치통합일자를 두고 다시 의견이 엇갈렸다.

당초 12월2일로 예정된 전독총선 직전에 정치통합을 선언,현서독의 선거법체제아래서 총선을 치르자고 주장하던 사민당측은 이를 번복,오는 9월15일에 정치통합을 선언하자고 조기통일론을 내세웠다. 사민당은 괴멸상태에 빠져들고 있는 동독의 경제를 가능한한 빨리 서독에 편입시켜 상황을 호전시켜야 한다며 9월12일의 모스크바 「2+4회담」 개최직후에 정치통합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기민당은 동독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14일이 적당하다고 맞섰고 서독의 콜총리는 동독 공산정권수립기념일인 10월7일을 넘기지 않기 위해 10월6일 통일을 선언하자고 동독측에 권고하기도 했다.

이같이 각 정당들 간에 각양각색이던 정치통합일정이 10월3일로 결정될 수 있었던 것은 전독총선일까지의 일정이 얼마 남지 않은 데다 각 정당 나름대로의 정치적계산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지금까지 통독작업을 담당해온 기민당으로서 정치통합일정을 앞당기자는 야당의 주장을 끝내 반대할 경우 조속한 통일을 원하는 유권자들로부터 통일추진세력으로서의 이미지가 손상될 우려를 간과 할 수 없는 입장이다.

당초 조기통독에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졌던 사민당 역시 조기 정치통합을 거듭 강조함으로써 기민당 못지 않은 통일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과시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것이다.

서방전문가들은 동독의 국민경제가 정치게임에 희생당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들은 어느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있으며 정치지도자들은 오히려 당분간 경제사정이 악화되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내린다. 선거에 이용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지난 14일 드 메지에르 총리는 사민당출신인 발터 롬베르그 재무장관과 사민당추천인 무소속의 피터 몰락 농림부장관 자유당의 크루트빈슈히 법무장관 등 4명을 「실책」을 이유로 사직시켰다.

사민당은 이를 기다렸다는듯 메지에르 총리를 가리켜 『콜의 꼭두각시』라고 몰아붙이며 기민당과의 대연정에서 탈퇴,지난 4월12일 이래 1백30일간 유지해온 동거상태를 마감했다. 이같은 움직임들은 앞으로 선거전에서 경제ㆍ사회 혼란의 책임을 서로 떠넘기기 위한 발판 마련 작업의 일환으로 분석되고 있다.

정치통합 일정이 결정되긴 했지만 선거전을 겨냥한 이같은 상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통합을 전후해서 안팎으로 몇가지 거쳐야할 순서가 남았으나 이는 부수적인 절차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오는 9월12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이른바 「2+4회담」이 남아 있다. 동서독과 2차대전 전승국인 미ㆍ영ㆍ불ㆍ소 등 4개국 외무장관이 통독문제를 다루기 위해 만나는 이 회담은아마도 이번에 마지막이 될 것이며 동서독의 점령국으로서의 지위를 포기하고 동서독의 통일을 보장하는 최종 인증서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이어 10월 1일과 2일 뉴욕에서 개최되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외무장관회담에서 통독의 국제적인 공인절차를 거쳐 11월19일부터 파리에서 열리는 CSCE정상회담에서 동서독의 통일을 재확인하는 성명서가 채택되어 외교적으로 통독절차를 마무리 짓게 된다.

내부적으로는 동독 지방의회선거를 거쳐야 한다.

오는 10월14일로 에정되어 있는 지방의회선거는 분단되면서 없어졌던 동독지역내의 5개 주의회의 부활을 위한 절차이다.

가장 중요한 행사는 12월2일의 전독총선.

동서독 양쪽 의회가 해산되고 명실상부한 하나의 의회를 탄생시키기 위한 전독총선은 통독작업의 가장 핵심적이며 최종적인 절차로 꼽혀왔었다. 그러나 「선통일 후총선」방안이 채택됨으로써 전독총선은 정치통합의 마침표 찍기 작업 정도의 의미만 갖게된 셈이다.<파리=김진천특파원>
1990-08-25 5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