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의 대부” 아부 니달이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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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0-08-17 00:00
입력 1990-08-17 00:00
◎“대서방 테러 강화” 후세인 특명 받고 다시 일선에/“해결사” 악명… 제2전선 구축 시도할 듯/5백여명 살해 경력… 친서방국들 “비상”

서방 정보기관들이 「원자탄 보다 위험한 존재」로 손꼽던 테러의 대부 아부 니달이 최근 몇년의 칩거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활동을 재개게할 것으로 보여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과 친서방 아랍국가들에 대한 테러공격을 통해 「제2전선」을 구축하려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밀명을 받고 현재 바그다드에 체류중인 것으로 알려진 아부 니달은 지난 70년대와 80년대 중반까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악명높은 테러분자 가운데 한명이었다.

한때 팔레스타인 테러사건이 터졌다하면 늘 그 배후인물로 지목되던 아부 니달은 그러나 그의 공ㆍ사생활은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어 얼굴이나 거처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아부 니달은 지난 84년 심장병으로 죽었다는 소문도 있었으나 이듬해 서독ㆍ프랑스 등 서방 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기도 했다.

『내 아들 비삼마저 내 정체를모른다』고 공언하고 있는 그는 철저한 비밀주의로 일관해 그를 인터뷰했던 기자들 마저 그가 진짜인지 의심할 정도이며 현재까지 알려진 그의 사진조차 신빙성이 없다.

아부 니달은 「투쟁의 아버지」란 뜻의 아랍어 가명이고 그의 본명은 「사브리 할릴 바나」로 알려져 있다.

올해 53세인 아부 니달은 요르단강 서안의 자파에서 부유한 감귤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나 성장기를 유복하게 보냈다.

그의 아버지 할림은 팔레스타인의 저명인사로 한때 이스라엘의 전설적인 초대 대통령 차임 와이즈만과 가깝게 지내기도 했으며 그의 형 모하메드는 아직도 이스라엘 점령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에서 장사를 하며 부유하게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48년 이스라엘 건국 후 베이루트에 정착했던 아부 니달은 그곳에서 미국인대학에 입학,엔지니어교육을 받았다.

그후 그는 「6일 전쟁」이 발발했던 67년 아라파트가 직접 관장하는 PLO소속 「파타」조직에 가입,고속승진을 거듭하다 70년엔 수단의 하르툼 PLO 본부장이 됐다.

그러나 그는 74년 아라파트가 이스라엘과타협하려 하자 이에 반발,아라파트암살을 시도했으며 이때문에 PLO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아부 니달은 그뒤 독자적인 테러조직을 양성했으며 대표적인 그의 조직으로는 「파타혁명위원회」가 있다.

이 조직은 비밀결사로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지만 추종세력이 2백∼5백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따.

그의 조직은 과거 1백여차례 이상의 테러공격을 감행,5백이 넘는 인명을 살해했고 특히 지난 82년에는 주영국 이스라엘 대사에 대한 테러를 저질러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게 만들기도 했다.

자신의 조카인 PLO의 온건파 참모 사이드 하마이를 살해할 정도로 냉혹한 그는 또한 『나는 아랍인들의 불행을 해결하는 해결사』라고 자처하는 등 과대망상적인 발언도 서슴치 않는 인물이다.<김현철기자>
1990-08-17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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