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잇는“망향”…새벽부터 붐벼/「방북」접수 첫날/성사기대감에 흥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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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0-08-05 00:00
입력 1990-08-05 00:00
◎“북한도 빨리 길터줬으면… ”/거의가 60∼70대 실향민/절차 묻는 전화도 빗발/신청자 70%가 “이산가족 상봉” 바라

정부의 「남북민족대교류」방침에 따라 북한방문증명서 발급신청서를 접수하기 시작한 4일 전국 2백67개 시ㆍ군ㆍ구청의 접수창구에는 이른 아침부터 방북 기대에 부푼 신청자들이 몰려 줄을 이었다.

이날 하룻동안 서울에서 3천2백95명이 방북신청서를 낸것을 비롯,전국적으로 6천6백65명이 신청서를 접수시켰다.

각 지방별로는 실향민이 많이 사는 경기가 1천1백37명으로 가장 많이 신청을 했고 인천 5백5명,부산 3백59명,강원 1백99명,충남 1백53명,대구 1백45명,전북 1백43명,경북 1백40명 등 이었으며 제주는 27명이 신청서를 냈다.

나이별로는 60세이상이 2천6백60명,50대가 1천6백53명 등 순으로 6ㆍ25이전 출생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방문목적별로는 이산가족 상봉이 3천9백77명,친지방문 6백60명으로 친지ㆍ가족을 만나려하는 신청자들이 70%가량 됐으며 관광은 1천2백63명이었다.

시ㆍ군ㆍ구청은 이날 상오 5∼6시부터 신청자들이 몰리자 업무시작시간을 앞당겨 강당과 회의실 등에서 접수를 받았으며 창구직원들은 점심마저 거른채 바쁜 일손을 놀렸다.

또 접수창구가 설치된 구청 등은 물론 동사무소 등에도 방북신청절차 등을 묻는 상담전화가 빗발쳐 다른 업무를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신청자들은 접수를 마친 뒤에도 삼삼오오 여기저기 모여 두고온 고향에 대해 얘기꽃을 피웠으며 『이번에는 정말 가볼 수 있는 거냐』며 반신반의 하기도 했다.

신청자들은 고향방문을 희망하는 60,70대 실향민1세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신청서의 기재난에 고향방문이외에도 관광ㆍ선교ㆍ학술문화ㆍ사업목적이라고 적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날 영등포구청에서 신청서를 낸 송유진씨(48ㆍ사업ㆍ영등포구 여의도동 42)는 『지난53년 개성에서 헤어진 어머니(68)를 이번 기회에 꼭 만나뵙고 그동안의 불효를 사죄드려야겠다』면서 『이번 민족대교류가 꼭 실현돼 통일을 앞당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구청에 신청서를 접수한 김기락씨(77ㆍ상업ㆍ중구 신당5동 85)는 『죽기전에 고향인 함북 북청에 가 가족들을 만나보는게 소원』이라면서 『북한이 이번 방문을 받아주기를 기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성동구청에 신청서를 낸 김종호씨(44ㆍ주부ㆍ성동구 구의2동 39)는 『이번 기회에 평생소원이던 금강산을 구경하고 싶다』고 말했다.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청에 신청서를 접수시킨 이종학씨(62ㆍ장안구 화서동 69)는 『사람들이 많이 몰릴 것으로 생각돼 새벽5시부터 나와 기다렸다』면서 방북이 실현되면 북한의 유적지를 둘러보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이날 부산진구청에 신청서를 맨처음 접수시킨 초읍국민학교교감 이송영씨(61)는 『6ㆍ25때 단신으로 함경북도 성진에서 월남한뒤 부모님과 형제들의 생사조차 모르고 있다』면서 『동서독도 통일한 마당에 북한도 민족화합차원에서 우리의 문호개방조치를 받아들여 방북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휴전선과 인접해 실향민이 많은 강릉시청에 방북신청을 한 황규찬씨(66ㆍ강릉시 노암동 267)는 『함남 함주군에 두고온 부모를 만나기 위해 신청서를 내기는 했지만 이번에는정말 방북이 이뤄질지 모르겠다』면서 눈물을 글썽이었다.

광주시 서구청에 딸 현순양(20ㆍ전남대 2년)과 함께 신청서를 낸 김종오씨(47ㆍ서구 진월동 신흥타운 301동)는 『관광을 겸해 북한의 실상을 알아보기 위해 접수시켰다』고 말하고 현순양은 『정부당국은 이번 방북을 꼭 실현시켜 1천만 이산가족의 한을 꼭 풀어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1990-08-05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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