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떠난 야 의원들 “소일거리 찾기” 고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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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0-08-02 00:00
입력 1990-08-02 00:00
◎당사 나가도 앉을 자리 없어 “빈둥”/사무실 가진 율사들은 나은 편/세비 거부로 지구당 운영비 마련도 걱정

복중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한 야당의원들 대다수가 마땅한 소일거리를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

평소처럼 의정활동 준비를 하려 해도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데다 당사에 나가더라도 앉을 자리마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다방 등지를 전전하며 잡담으로 시간을 보내는 「여의도 떠돌이」 신세로 전락했다고 「사퇴의원」들은 하소연하고 있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피서를 떠나려해도 정국상황 때문에 주위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지역구활동도 무더위속에서는 오히려 지역주민들을 불편하게만 만들 우려가 커 몸을 사리게 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의정활동 차원의 외유는 절대금지하라는 당방침에 따라 「출국정지」 조치를 받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

한동안 가속화되던 야권통합문제마저 최근들어 주춤한 상태인데다 여권과의 대화단절로 「원상회복」의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아 답답하고 불안하기조차 하다는 것이 한결같은 호소다.

특히 8월부터는 세비를 일체 거부키로 함에 따라 보좌관·비서관·운전기사 월급과 지구당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마저도 마련할 길이 막연하다고 한숨짓는 의원들이 적지않다.

○…이런 상황속에서 최근들어 대다수 의원들의 관심은 서울시내에 개인 또는 합동사무실을 차리는 문제에 쏠리고 있다.

지난달 31일 의원회관에서 철수를 완료함에 따라 개인비품을 보관해야 할 장소가 당장 필요한데다 적어도 전화연락을 할 수 있는 연락장소 정도는 확보해 두어야 한다는 것이 사무실 개설의 가장 큰 이유.

일부 중진의원들은 야권통합이 이뤄질 경우 예상되는 계보정치에 대비한 전초기지 마련이라는 계산까지 염두에 두고 개인사무실 마련을 서두르기도.

평민당의 경우 개인사무실 개설 자체가 김대중총재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는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금기시되어 왔던 사정을 감안하면 의원직사퇴서 제출을 빌미로 한 당중진들의 개인사무실 마련은 『당내에 두어명의 후계자를 양성하고 있다』는 김총재의 최근 발언과 연관지어 주목되고 있다.

○…평민당의 경우 당직자들은 당사에 있는 사무실을,서울출신 의원들은 지구당사무실을,율사출신 의원들은 변호사사무실을 활용하고 있으며 지방의원들은 중진의 경우 개인사무실을,소장의원들은 2∼4명이 합자한 합동사무실을 마련했거나 준비중이다.

1일 현재 개인사무실을 별도로 마련한 의원들은 김원기문교체육위원장,유준상·임춘원의원 등이다.

이협·정균환·김영진·이돈만의원은 당사 근처 태양빌딩에 1천2백여만원의 보증금으로 합동사무실을 마련했고 조홍규·정상용·홍기훈의원도 여의도 산정빌딩에 「망명국회」를 함께 마련해 「소장파 학습장」으로 삼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 소장의원은 국회가 정상화되더라도 사무실을 계속 유지하며 세미나 개최·신문잡지 공동발행 등을 통해 새 정치 창출을 모색하겠다고 기염.

유인학의원은 의정활동의 필요에서 얻어두었던 여의도 초원아파트를 개인사무실로 차렸는데 박석무의원이 짐을 맡기러 왔다가 「더부살이」.

○…의원직사퇴서 제출이후비상대기 상태로 일관해 오던 평민당의원들은 야권통합문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당분간 당내행사도 전무한 상태임을 감안,김대중총재의 하계휴가기간으로 예정된 오는 8일부터 12일까지에 맞춰 가족동반 휴가를 계획중.

특히 겨울에는 정기적으로 집단휴가를 떠났던 초선의원들은 이번에도 단체로 2박3일 정도의 단체피서를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외유는 정부지원 차원은 절대불가라는 것이 당방침이지만 얼마전 허만기의원이 개인적 사유로 중국을 방문했다 31일 귀국했고 이철용의원이 미 국무부 초청으로 방미중.

○…의원직 사퇴서 제출이후 평민당의원들의 정치적 활동보폭이 좁아지고 있는 반면 민주당의원들은 상대적으로 활동공간이 넓어진 듯한 인상.

지난 임시국회를 비롯한 여야 1대1 대결구도하에서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한 민주당은 존립기반조차 위태로울 정도였으나 「사퇴정국」이 「통합정국」으로 옮아가면서 일사불란한 김대중총재 체제의 평민당의원들에 비해 원심력이 크게 작용하는 민주당의원들은 그만큼 독자적인 목소리를 표출한 기회가 늘어난 셈.

특히 현역의원 8명중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박찬종·김광일·장석화·노무현의원 등 율사출신의원들은 야권통합 논의와 늘어나는 변호사수임등으로 바빠진 느낌.

이들 중 개인변호사사무실을 내고 있는 장석화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3인은 장기욱 전의원과 함께 이번 의원회관철수를 계기로 합동변호사사무실을 개설할 계획.

김정길의원은 의원직사퇴후 4·3 보선직후 야권통합을 위해 평민당 이해찬·이상수의원 및 민주당 노무현의원 등과 공동으로 마련한 마포합동사무실에서 소일해 왔으나 사퇴정국의 장기화에 대비,여의도에 별도개인사무실을 낼 채비. 이밖에 이기택총재는 계보사무실을 현재 사용중인 이태원 H호텔에서 광화문쪽으로 옮길 계획이고 허탁의원도 과거 염업조업이사장시절 사용하던 광화문의 개인사무실을 활용할 계획.〈김명서·구본영기자〉
1990-08-02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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