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비 당내입지 강화/28차 소 공산당대회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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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0-07-15 00:00
입력 1990-07-15 00:00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자신의 진로 및 소련의 전반적인 향방이 달린 제28차 소련공산당대회에서 「완승」을 거두었다기 보다 차라리 「고르바초프의 건재」를 과시했다. 상처뿐인 영광인 셈이다.
이번 전당대회는 원래 「페레스트로이카」의 운명을 좌우할지도 모르는 중대국면에서 열렸다. 급진 개혁파와 예고르 리가초프를 정점으로 하는 보수파가 정면 충돌할 위험성과 고르바초프 자신이 보수파의 집중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리가초프의 정치적 생명을 종식시켜 당내 보수세력을 일단 잠재우는데 성공했다.
고르바초프는 또한 정치국의 개편을 통해 정치국의 전력을 약화시키는데 성공했으며 그 자신이 당서기장에 재선됐고 보수파의 거두 리가초프의 부서기장 진출을 저지,온건개혁파인 이바시코를 부서기장에 당선시키는등 「페레스트로이카」의 지속을 위한 당내 기반을 굳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그의 개인적인 승리에도 불구,당을 떠나는 급진개혁파를 잡아 두는데는 성공하지 못했으며 결국 레닌이래 처음있는 소련공산당의 분당사태는 막지 못했다.
급진개혁파 보리스 옐친과 사실상 그가 이끌고 있는 민주강령그룹의 탈당은 비록 숫적으로는 큰 타격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 정치적 의미는 대단히 크다.
옐친은 그의 탈당이 소련의 개혁과 민주화를 앞당기는 계기가 될것으로 판단한것 같다.
고르바초프는 옐친의 탈당에 따른 파급효과를 극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옐친의 인기가 날로 커가고 있어 소련정국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가늠하기 어렵게 됐다.
이번 전당대회에서는 또 「페레스트로이카」의 이념담당 메드베데프,야코블레프,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등 고르바초프의 측근들이 보수세력들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대회기간동안 군부 대의원석에서는 『저들이 동유럽을 팔아먹었다』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처럼 보수파와 급진 개혁세력의 협공에 직면한 고르바초프는 앞으로 2년내에 그의 개혁정책이 성공하지 못하면 지도부가 사임한다는 마지막 카드를 내밀어 타협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고르바초프는 그의 시장경제개혁이 방해받을 경우 소련사회가 붕괴할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와 정치적 수완을 적절히 구사해 강경파 반대자들을 억누르며 소련공산당 사상 가장 긴 이번 28차당대회를 장악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가 이번 대회에서 강경 보수파의 반기를 제어할 수 있었던 것은 보수파를 설득했거나 힘으로 눌렀다기 보다 보수파내에 고르바초프를 대체할 「대안」이 없었다는게 보다 더 적절한 설명이다.
보수파는 숫적으로 아직도 당내 제일의 세력이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고르바초프는 보수파와의 대결과정에서 개혁파의 지원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파의 상당수가 떨어져 나갔다.
옐친과 민주강령파 대의원들이 탈당을 선언한데 이어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시장 마저도 이에 가담함으로써 고르바초프는 최대공화국과 함께 2대 도시를 비공산계 지도자의 수중에 내주는 손실을 입었다. 따라서 그는 향후 2년간 급진개혁파의 지원없는 상황에서 보수파와 싸워야하는 무거운 짐을 안게됐다.
「페레스트로이카」는 이처럼 내외의어려움 속에 처해 있지만 이번 당대회는 소련사회에 내재해있던 다양한 정치적 목소리를 표출시켜 어차피 가야할 소련의 다원화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윤청석기자>
1990-07-15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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