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들의 집단 퇴장/이기백 정치부차장(오늘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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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0-02-21 00:00
입력 1990-02-21 00:00
그러나 「절차」의 존중성때문에 「세리머니」로 일컬어지는 개회식 벽두부터 국회의장의 식사에 불만을 품은 야당의원들이 고성을 터뜨리며 퇴장함으로써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상오 10시부터 열릴 예정이던 개회식은 오래간만에 만난 선량들끼리 인사와 잡담을 나누느라 마치 국민하교 교실처럼 시끌벅적해 착석을 권유하는 2∼3차례의 안내방송끝에 10시4분쯤 국민의례를 시작으로 개회됐다.
이어 김재순국회의장이 개회사를 낭독했다.
김의장이 모두 9백41자로 구성된 개회사의 중간쯤에서 『어제까지의 여소야대의 4당병립체제가 해체되고 국민에게 신뢰와 희망을 줄 수 있는…』이라고 말하는 순간 단상을 중심으로 왼쪽에 있는 야당석에서 고함과 야유가 터져나왔다.
『4당체제를 「황금분할」이라고 한사람이 누구냐』
『의장이 그따위 소리해도 돼』
야당의원들이 일제히 일어나 소리를 지르는 소란속에 개회사가 1∼2분 중단된 뒤 김의장은이를 제압하려는 듯 목소리를 더욱 높여 다시 개회사를 읽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야당의원들이 전원 퇴장했으며 임시국회 개회식은 10여분 만인 10시14분쯤 끝났다.
이로써 13대 국회 본회의에서 한 당의 선량들이 전원 퇴장하는 사례를 남겼으며 거여소야 구조의 국회운영이 앞으로 순탄하지만은 않으리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물론 야당의원들의 집단적인 퇴장이 정계개편 후 거대여당을 길들이기 위한 선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처럼 거여가 힘으로 밀어붙이거나 소야가 사소한 명분으로 생떼나 부리는 풍토는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 국민의 바람이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여야가 정책대결이나 국민의사의 수렴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바람직하나 명분이나 선명성을 의식해 극한대립으로 치닫는다면 이제 우리의 높아진 국민의식이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국회의 개회식은 일종의 「절차」이니 만큼 「절차」를 존중하되 잘못된 점은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시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하겠다.
1990-02-21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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