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에 선 공산주의/변혁물결 집중탐구:2
기자
수정 1990-02-07 00:00
입력 1990-02-07 00:00
지난해 유럽대륙의 서부와 동부에서는 큰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 서쪽 프랑스에서는 「혁명」 2백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거국적으로 거행되었고,동쪽에서는 보다 압도적인 광경들이 세계의 숨을 죽이고 있었다. 베를린에서 냉전의 장벽이 터져 나는가 하면,부쿠레슈티의 펠리스 광장은 대학살을 수반한 내전끝에 얻어진 국민의 정치적 소생으로 열기가 가득했다. 유럽대륙 양편의 그 사건들은 모두가 세계사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이는데 사람들의 눈과 귀는 주로 동쪽으로만 쏠리다시피 하였다. 동쪽에서 전개되는 일련의 사건들이 주는 놀라움이나 충격이 훨씬 큰것이었기 때문이리라. 프랑스 혁명 2백주년과 그 대단원의 막은 아직 내려지지 않은 상태인 동구의 드라마,그것은 서로 별개의 사건일까. 이 물음을 풀어보는 것은 동구의 변혁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의미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급진혁명논리 무장
「프랑스 혁명」은 흔히 유럽대륙에서 최초로 시민국가의 탄생을 가능케한 자유주의적 시민혁명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렇게 단순하게 알고 지나쳐 버릴수 없게 하는 면이 있어 보인다. 혁명의 전개과정이 단일한 이념이나 노선으로 시종 일관하고 있는 것이 아님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크게 두 단계로의 가름이 가능한데,그 첫단계를 헌법국가를 세우기 위한 혁명(1789∼1791)이라 규정한다면,그 다음단계는 헌법국가를 부정하기 위한 혁명(1792∼1794)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시기적인 구분을 한다면 전자는 제1차 혁명이 되고 후자는 제2차 혁명이 된다.
「제1차 혁명」은 인권의 기본이념이 되는 민주적 헌법국가의 건설이 그 과제였다. 당시 국민의회는 스스로 「제헌의회」임을 선언하고 봉건제도의 폐지,귀족과 시민의 법적 평등,귀족특권의 폐지를 의결하고(1789년8월5일) 인권선언을 채택했으며(1789년8월16∼26일),헌법심의와 문안작성에 2년을 투입한 끝에 1791년9월3일 헌법을 의결하였다. 18세기 정치적 계몽주의의 정수를 이루었던 인권과 권력분립과 민주주의가 이 헌법속에 담겨졌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유민주주의가 그 이념적 모태였다고 할수 있다. 이 헌법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주권자의 존재를 거부한다는 점이다. 「어느 일부의 국민이나 어느 일개인도 주권의 행사를 전유할수 없다」는 명문규정이 있기도 하려니와 권력분립이란 원리는 주권자의 존재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해서 국민주권을 부정한것은 아니었다.
「주권은 불가분,불가양이며 시효에 의하여 소멸하지 않는다. 주권은 국민에 속한다」 국민주권은 명시적으로 선언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권은 「헌법제정권력」이란 의미에 국한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일단 헌법이 제정되면 헌법속에 해소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국민은 주권의 담지자일뿐 그 행사자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 헌법은 1년도 채 안가서 도전을 받는다. 1792년8월10일 파리코뮨(파리시 평의회)에서 시작된 「제2차 혁명」이 발발한 것이다. 이 혁명의 주도자들(로베스피에르 그룹)은 인권과 권력분립에 기초한국법을 파기하고 인간의 절대적인 「해방」을 추구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관심사는 국가권력의 제한이 아니라 그것의 극복이라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들이 관철하려고 한 것이 곧 「주권적 민주주의」였다. 이것은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이라는 이상을 그 전제로 한다.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구별이 없어지고 만인이 모두 지배자가 되는 경지가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란 「대표」의 원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의 원리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고,완전한 자유는 이러한 동일성에서만 기대될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현실의 국가에서는 실천이 될 수 없는 이상이요 극단적인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동일성 또는 완전한 자치라는 것은 그것이 순수한 이상으로 고양될 경우 오히려 권력국가적 현실을 전체주의적 테러로까지 고양시키는 것도 허용하게 된다. 동일성이라는 목표가 성취될때까지는 거기에 이르는 도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또는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사람,곧 「진리의 엘리트」의 지도를 따라야 한다는 논리가현실을 규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혁명재판소」(인민재판소의 일종으로 원고와 재판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의 설치(1793년3월10일),「공안위원회」의 구성(1793년4월6일),신헌법 발효의 연기(1793년7월),「용의자 법률」의 의결(1793년9월17일ㆍ이 법률에 의해 테러가 합법화됨) 등 일련의 조치들이 취해진 것은 바로 이러한 논리가 관철되어 나가는 표현들이었다. 1793년10월10일 국민공회는 마침내 「공안위원회」에 무제한의 권력(주권)을 부여하는 수권법을 정식으로 공포하기에 이른다. 1789년의 혁명으로 사라졌던 주권자가 명실공히 재등장한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혁명전의 주권자가 군주였었는데 비해서 이제는 민중의 「참이익」 옹호그룹이라는 것이다. 이듬해 6월10일 사형이 「혁명재판소」의 임의적인 권한에 속하게 되고 시민이 섬겨야할 「교리」까지 도입되었다.
「국민복지의 관리자」들은 생사여탈권 뿐만 아니라 생존자의 신앙문제를 결정할 권리까지 소유하게 되었던 것이다.
1789년 인권의 이름으로 시작된 대혁명이 그 인권의 절대적인대립물로 변화되고 만 셈이다. 국가가 진리와 인간의 생사와 신앙영역까지 마음대로 지배하기에 이르렀으니까. 이와 같은 야만성의 극치는 다름아닌 「주권적 민주주의」가 초래한 현실적 귀결인 것이다. 1794년7월24일 로베스피에르와 그의 추종자들이 치열한 권력투쟁에 패하여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짐으로써 혁명은 일단 막을 내린다.
○“인민의 옹호자” 강변
「주권민주주의」는 프랑스 혁명의 대단원이 막을 내리면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것인가. 동구사태를 눈여겨 보면 유럽지역내에 있어서 그것은 차우셰스쿠의 몰락이 분기점으로,말하자면 퇴장의 시작으로 인정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왜냐하면 그는 바로 프랑스혁명의 저 급진적 시기의 혁명논리 위에 구축된 국가의 주권자였기 때문이다. 루마니아의 로베스피에르로서 그도 처형되는 순간까지 『인민의 이익의 옹호자』임을 주장했다.
2백년의 시간을 상거해서 발생된 역사적 사건이 이념사적 견지에서 동질성을 지닌 것임은 분명해졌다. 양자가 공히 주권자의 현존을 전제로 하는 민주주의를 추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프랑스 「제2차 혁명」 시기의 「국민의회」는 오늘의 민주적 집중제(Democratic Centralism)에 있어서의 소비에트(평의회)의 모범이 된 것이고,「혁명재판소」와 「공안위원회」는 각각 인민재판소와 전위당(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전례가 된 것이다.
「노동계급과 모든 근로대중의 이익」이라는 상투어는 프랑스 제2혁명 그룹의 전가의 보도였던 「민중의 참이익」의 복사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2백년 전이나 오늘이나 좌파혁명의 그 주도자들은 「진리의 엘리트」임을 선전한다. 그리고 로베스피에르가 루소의 「국교」를 「도입」했듯이 레닌ㆍ울브리히트ㆍ차우셰스쿠는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을 국교로 도입했다. 요컨대 프랑스 제2혁명기의 「주권민주주의」는 동구 공산권이 신봉해온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혹은 「인민민주주의」)의 원형이라 보아도 틀림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그 발상지 파리에서 1871년 「파리코뮨」을 통해 50여일간 득세를 한 적이 있고 1917년의 러시아혁명을 계기로 해서 역사의전면에 다시 등장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새 현형 등장 주목
이렇게 보면 「프랑스대혁명」은 2세기동안 서로 각축하면서 현대사를 각인해 오다시피한 민주주의의 두 이념형의 최초의 경쟁이 시발을 본 사건이고,1989년의 동구의 변혁은 2백년에 걸친 이데올로기적 세계시민전쟁의 두 주역중의 하나가 드디어 힘이 부치기 시작했음을 나타내는 징조로 보면 될것 같다. 그것이 금세기가 다 가기전에 현실적 생명력을 끝내 상실하고 정치이념서적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될것인지,아니면 모종의 새로운 현형을 등장시킴으로써 존속을 계속할 것인지 금후의 귀추가 주목된다. 현재 확실해지고 있는것은 폴란드ㆍ동독 혹은 체코등 인민들이 메시아주의적 전통의 멍에로부터 빠져나와 경험주의적이고 함리주의적인 방향으로 계몽과 성숙을 성취해 나가고 있는 나라들의 경우 「민중주권민주주의」는 주권자의 현존을 전제로 하는 경제체제(계획경제체제)를 대동하고 서서히,그리고 쓸쓸히 무대의 뒤로 사라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정수 <교육학박사ㆍ경희대교수>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문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대학원 교육철학 및 정치교육학 연구(교육학 박사)
■서독 튀빙엔 대학 연구교수(정치교육학 연구)
■민주 이념연구소 소장
■저서=▲민중과 혁명논리 ▲한국대학생의 실존적 좌절
1990-02-07 5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