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1만 4295곳 투표소 발길
임시거처 이재민 “주민 100% 투표”이재명 지지자들 자택 앞서 환호성
레슬링·태권도장 등 투표소로 변신
“참관인 교체해 달라” 소란 20대 체포
투표 관련 112 신고 전국서 793건

부산 뉴스1
21대 대선 투표일인 3일 전국 1만 4295개 투표소에는 하루 종일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러 온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산불 피해를 본 이재민들부터 100세가 넘은 어르신, 인생 첫 투표인 새내기 유권자까지 새 대통령에게 “경제를 살려 달라”, “이제는 분열을 끝내야 할 때”라는 바람을 전했다. 오후 8시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득표율이 과반을 넘는다는 지상파 방송 3사의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이 후보의 인천 계양구 자택 앞에 모인 지지자들은 크게 환호했다.
이 후보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 주민이 창문 밖으로 태극기를 흔들며 축하하자 지지자들은 박수로 화답하는 등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지지자들은 함께 “대통령 이재명”을 여러 번 외치기도 했다. 이 후보의 아파트 공동현관 바로 앞에 순식간에 지지자들이 몰리면서 한때 소란스러워지기도 했다. 경찰은 인력을 투입하고 통제선을 설치하는 등 경호 태세를 강화했다.
앞서 이날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투표가 진행된 가운데 산불로 집이 타 임시거처에 머무는 이재민들도 투표소를 찾아 눈길을 끌었다. 경북 영덕군 영덕읍 국립청소년해양센터에 머무는 영덕읍 석리 주민들은 이날 오전 함께 차를 타고 투표소에 도착했다. 석리 주민 김모(70)씨는 “산불 피해로 임시거처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투표는 포기할 수 없었다”며 “마을 주민 100%가 투표했다”고 말했다.
오전 6시 ‘오픈런’으로 붐볐던 투표소는 정오쯤 비교적 한산해졌지만 투표소를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아들딸과 함께 서울 종로구 종로5·6가동 2투표소를 찾은 방성돈(53)씨는 “각자 지지하는 후보는 달라도 투표의 중요성을 알기에 온 가족이 함께 왔다”며 “새 대통령은 높은 투표 열기를 생각해 화합의 장을 열어 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충북 옥천에서는 호적상 121세인 이용금 할머니가 청산면 다목적회관에 마련된 투표소를 찾았다. 이 할머니는 “생전 마지막 대통령선거가 될 수 있어 꼭 참여하고 싶었다”고 했다. 충주에선 1923년생으로 올해 102세인 서병국 할아버지가 살미면 세성초 체육관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물과 바다도 투표 행렬을 막지는 못했다. 경남 통영시 한산면의 부속 섬인 죽도·호도·용초도 주민 31명은 오전 7시 첫 배를 타고 선거관리위원회가 제공한 행정선과 유람선을 이용해 면사무소가 있는 한산도로 건너가 투표를 마쳤다. 정석재(64) 죽도 이장은 “섬 주민 대부분이 고령이지만 나라가 잘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투표소로 향했다”고 말했다. ‘육지 속 섬마을’로 불리는 강원 화천군 화천읍의 파로호 동촌1리 주민들은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10㎞ 떨어진 투표소로 이동했다. 민통선 안에 있는 경기 파주 대성동 마을과 통일촌, 해마루촌 주민들도 장단출장소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한 표를 던졌다.
이색 투표소도 눈길을 끌었다. 부산 수영구 남천동 유권자들은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던 레슬링 체육관을 찾아 투표에 참여했고, 경기 성남종합운동장 실내씨름장과 안산시의 한 태권도장, 수원시 팔달구의 결혼식장도 투표소로 변신했다. 광명시의 한 음식점이 일부 공간을 투표소로 제공하면서 한쪽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풍겨 오는 이색적인 광경도 연출됐다.
유권자들은 침체한 경제로 고통받는 현실이 나아질 수 있는 정책을 새 대통령에게 요구했다. 서울 용산구에 사는 정만섭(72)씨는 “은퇴하고 가게나 경비업체에서 일하려고 해도 채용이 안 된다”며 “경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학생 김민기(25)씨는 “청년층과 중장년층 모두가 상생하는 일자리 정책이 무엇인지 새 대통령이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전투표 때 대리투표와 투표용지 반출 사건 등이 발생한 데 이어 이날도 투표소 인근에서 난동과 소란이 발생했다. 경찰청은 이날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투표 관련 112 신고가 전국적으로 모두 793건 접수됐다고 밝혔다. ▲투표방해·소란 223건 ▲교통불편 13건 ▲폭행 5건 ▲오인 등 기타 신고 552건이었다.
전북 부안에선 이날 오후 20대 남성이 변산초 투표소 내부로 무단침입해 “부정선거가 의심된다. 참관인을 교체해 달라”며 소란을 피우다 체포됐다. 서울 강동구에서는 60대 남성이 투표소에서 약 15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파란색 옷을 입고 투표를 독려했다가 체포됐고, 동대문구의 한 투표소에서는 중년 남성이 선거관리인과 다른 유권자들에게 고성을 지르고 투표소 내부를 촬영하는 등 행패를 부리다 체포되기도 했다. 서울 서초구 원명초 투표소 인근에서는 ‘대통령 김문수’라고 적힌 빨간색 풍선이 발견돼 선거사무원이 이를 철거했다. 투표하러 나온 노인이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날 오전 9시 59분쯤 인천 연수구 선학동 투표소에서 70대 여성이 쓰러져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치료 도중 숨졌다.
제대로 신분 확인을 하지 않아 동명이인이 투표하는 등 선거관리 부실로 인한 혼선도 전국 곳곳에서 발생했다. 대구 수성구 중동의 한 투표소에선 50대 여성이 자신의 선거인명부에 타인의 서명이 돼 있다며 선관위에 신고했다. 선관위와 경찰이 확인한 결과 동명이인이 투표소를 잘못 찾아와 투표한 것으로 파악됐다.
유규상·김주연 기자·전국 종합
2025-06-04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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