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말을 멈췄을때,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날처럼, 봄은 부재입니다”[강동삼의 벅차오름]

강동삼 기자
강동삼 기자
업데이트 2024-04-14 06:30
입력 2024-04-12 22:51
#당신이 말을 멈췄을때 눈물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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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조천읍 제주돌문화공원 하늘연못에서 바라본 바농오름. 제주 강동삼 기자
제주시 조천읍 제주돌문화공원 하늘연못에서 바라본 바농오름. 제주 강동삼 기자
‘당신이 말을 멈췄을 때 그냥, 눈물이 나왔습니다. 나도 모르게/그때 알았습니다. 코에서도 눈물이 새어 나온다는 것을/당신이 ‘나의 아버지, 나의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순간에 찾아온 긴 침묵/당신이 말을 잇지 못했을 때, 그 침묵이 눈물이라는 것을/그때 알았습니다. 길게 내쉬는 한숨도 눈물이라는 것을…./침을 삼키는 순간에도 눈물을 삼키고 있다는 것을/두 주먹을 불끈 쥐는 순간에도, 흘러내리는 눈물을 삼키고 있다는 것을/그때 알았습니다. 두 손등에 젖은 땀도 눈물이라는 것을/당신이 말을 멈췄을 때, 그냥 눈물이 나왔습니다. 나도 모르게/봄은 그날처럼, 오늘도 부재(不在)입니다’

4월이 되면 노란 유채꽃마저 슬프고 연분홍빛 벚꽃마저 슬픕니다. 찬란해서 더욱 슬프기도 하지만 늘 이 봄을 함께 맞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나서 슬퍼집니다. 4·3 희생자의 무죄를 위해 힘쓰던 어느 검사가 4·3특집방송에서 ‘방송사고’를 낸 듯 침묵할 때 눈물이 나왔습니다. 이런 헌시를 바치고 싶었습니다.

4·3평화공원 추념식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비가 그치지 않는 길에 우연히 들른 세월호 제주기억관에서 만난 사람들이 ‘오늘’을 살아낼 때, 나도 모르게 이렇게 눈물이 새어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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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농오름으로 가는 길목의 풍경도 한적하고 서정적이다. 제주 강동삼 기자
바농오름으로 가는 길목의 풍경도 한적하고 서정적이다. 제주 강동삼 기자


# 세월호 10주기가 다가옵니다… 당신과 나 단 둘이 봄 맞으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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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하늘연못에 닿은 바농오름
<29>하늘연못에 닿은 바농오름
그건 마치 비현실적이었습니다. 노란 유채꽃도 졸리운 듯 하늘거릴 때도, 연분홍 벚꽃이 꽃비처럼 흩날릴 때도, 그 침몰하는 장면만 계속 보여주던 방송이 너무나 비현실적이었습니다. 곧 구할 것이란 희망을 침몰시키고 배가 가라앉을 때 그제서야 현실임을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그때와 똑같은 봄날, 김윤아의 ‘봄이 오면’이 라디오에서 흘러 나왔습니다. ‘봄이 오면 하얗게 핀 꽃 들녘으로 당신과 나 단 둘이 봄 맞으러 가야지….’

나는 그만 침묵하며 어깨를 들썩였습니다. 벌써 세월호 10주기입니다.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길을 나섰습니다. 봄 맞으러 갑니다. ‘어디로든 괜찮습니다’라고 내 안의 누군가가 말하는 듯 했습니다. 조천읍 돌문화공원 하늘연못에서 바라봤던 그 바농오름이 생각났습니다. 차를 몰고 교래자연휴양림을 거쳐 돌문화공원을 지나면 ‘방탄카페 영포에버’ 표지판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내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렸습니다. BTS 멤버들의 사진과 굿즈, 앨범들이 수두룩한 카페겸 글램핑장을 지나쳐야 합니다. 외길이 끝날 무렵, 목장 앞 빈터 옆에 목적지 바농오름이 보입니다. 교래리 산 108번지에 위치하며 조천새마을목장을 보호하는 오름으로 수려한 산세를 자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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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농오름 가는 길에 조우하는 방탄카페 영포에버의 실내외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바농오름 가는 길에 조우하는 방탄카페 영포에버의 실내외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불어같은 제주 사투리 ‘바농’은 바늘입니다… 바농오름으로 봄 맞으러 갑니다
바농은 제주 방언으로 바늘입니다. 가끔 제주 사투리가 불어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자로는 침악(針岳), 혹은 반응악(盤凝岳)이라 표기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오름에는 가시덤불이 많은 걸까요. 1코스와 3코스 표지판 앞에서 망설입니다. 1코스 앞에는 편백나무 숲길로 가파르게 생겨난 계단이 많았습니다. 나보다 먼저 일보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아저씨를 웬지 부러운듯 불러세웁니다. “한참 올라가야 하나요?” “그래도 이 길이 빠릅니다” 그는 내가 가슴벅차게 한숨을 내쉬는 동안 벌써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다람쥐보다 빠르다는 생각을 합니다. 20여분 올랐을까요. 전망대가 금세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방금전에 만났던 아저씨가 산불감시요원으로 그 전망대 산불초소에서 날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헐떡거리는 내가 안쓰러운 듯, 삼다수 물병을 건넵니다. 꿀맛같았습니다. 이온음료보다 더 청량하다는 생각을 처음 했습니다.

조천에서 태어난 유형진63)씨는 61년생 소띠랍니다. 그가 마치 자부심을 느끼듯 “하루에 몇백명씩 온답니다. 나이든 사람들은 둘레길을 돌아서 다른 오름으로 가기도 하지요” 라고 묻지도 않은 말을 혼잣말 하듯 합니다. 그는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어주시고는 정상 분화구를 도는 2코스가 있는데 10분이면 도니까 한바퀴 돌아보고 가라 합니다. 전망대에선 한라산 정상도, 조천읍내도 한눈에 박힙니다. 분화구는 그리 깊지 않습니다. 귀한 복수초도 만납니다.

내려가는 길은 낭떠러지입니다. 올라왔던 1코스로 내려갈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그러나 이미 돌이킬 수 없습니다. 사는 게 그런 거 같습니다. 시행착오의 연속입니다. 간혹 욕심을 부리면 화가 돌아옵니다. 하지만 인생은 도전하는 것이겠죠. 낭떠러지를 조심조심 내려옵니다. 미끄러지지 않게, 아주 천천히…. 그리고 둘레길을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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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농오름 정상에서 바라본 조천읍과 한라산, 분화구와 삼나무숲, 복수초. 제주 강동삼 기자
바농오름 정상에서 바라본 조천읍과 한라산, 분화구와 삼나무숲, 복수초. 제주 강동삼 기자


# 돌문화공원 하늘연못에 비친 바농오름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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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돌문화공원의 하늘연못에서 바라본 바농오름. 제주 강동삼 기자
제주돌문화공원의 하늘연못에서 바라본 바농오름. 제주 강동삼 기자
바농오름은 돌문화공원 하늘연못에 비친 모습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 돌문화공원으로 향합니다. 해설사와 함께 하는 돌문화공원을 탐색합니다. 설문대할망의 전설과 오백장군 위령탑으로 가는 길목에 19계단이 있는데 그 끝은 인증샷을 찍는 핫스폿이라고 전해줍니다. 한라산에 베개를 베고 발이 관탈섬까지 갔다는 전설도 전합니다. 이 공원은 93만 2538㎡(약 28만평)의 돌들을 이용해 만든 공원입니다. 여기서 나온 돌들과 국민들이 기부한 돌로 전시해놓았답니다. “돌을 돌이라고 하면 의미가 없습니다”라며 의인화하듯 해설해 듣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일부러 이름을 안 붙인 돌들을 감상해봅니다. 정말 동행하는 탐방객의 생각과도 달라 놀랐습니다.

곶자왈의 나무들을 보면 뿌리가 대지 위로 나와 있습니다. 그 대지 밑은 돌 밖에 없어 뿌리가 위로 올라옵니다. 죽은 뿌리가 아니고 서로서로의 나무를 붙잡고 돌들을 붙잡고 지탱하는, 척박한 곳에서 견뎌낸다는 슬픈 사연도 들려줍니다.

하늘연못에서 바농오름이 펼쳐집니다. 설문대할망은 키가 무려 4만 9000m 거녀였다고 합니다. 전설은 설문대할망의 죽음을 두가지 형태로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자식을 위해 끓이던 죽솔에 빠져 죽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키가 큰 걸 자랑하다가 물장오리라는 연못에 빠져 나오지 않는 것이랍니다. 물장오리 연못을 재현한 곳은 실제로는 갈대만 무성했습니다. 돌박물관 옥상에 설계된 하늘연못은 설문대할망 전설 속의 죽솔과 물장오리를 상징적으로 디자인한 원형무대입니다. 지름 40m, 둘레 125m이다. 봄이 부재인 사람들이 하늘연못에 오면 봄을 맞이할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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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돌문화공원 하늘연못.  제주 강동삼 기자
제주돌문화공원 하늘연못.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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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됐던 제주돌문화공원 하늘연못. 제주 강동삼 기자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됐던 제주돌문화공원 하늘연못. 제주 강동삼 기자


#1박2일 촬영지로 유명해지고 한국관광 100선에 꼽힐만큼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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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로 라이트를 켜면 벽면에 비친 돌은 마치 성산일출봉을 닮아 있다. 전통초과마을로 가는길, 돌문화공원에서 바라본 바농오름, 제주전통항아리, 오백장군, 설문대할망이 자신을 안고 있는 어머니의 방. 제주 강동삼 기자
휴대전화로 라이트를 켜면 벽면에 비친 돌은 마치 성산일출봉을 닮아 있다. 전통초과마을로 가는길, 돌문화공원에서 바라본 바농오름, 제주전통항아리, 오백장군, 설문대할망이 자신을 안고 있는 어머니의 방. 제주 강동삼 기자
가족과 연인들이 줄을 서고 있습니다. 연못으로 들어가서 인생샷을 찍는 곳입니다.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1박2일 촬영지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어쩌면 장화를 신고 들어가서 찍는 이곳의 인생샷만으로도 하루를 보상받는 느낌이 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셔터를 아무렇게나 눌러도 그림이 되는 곳입니다. 아이도 어른도 이처럼 행복하게 사진을 찍는 모습을 정말 오랜만에 만나 덩달아 기쁩니다. 혼자 온 저는 바농오름을 배경으로 그들의 모습을 담습니다. 다행히 4월이 마냥 슬프지만은 않다는 걸 깨닫습니다.

제주돌박물관 입구에는 현기영 선생이 자주 책에 사인하며 써주던 ‘수급불류월’이 한자로 새겨져 있습니다. 서귀포 출신의 서예가인 소암 현중화 선생의 글을 그대로 따왔답니다. 물은 급히 흘러가건만 물속의 달은 흘러가지 않는다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뜻합니다.

느릿느릿하게 산책하기에 좋은 돌문화공원 돌박물관에는 희귀한 제주화산석 400여점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 제주돌박물관이 세워진 부지는 1989년 12월부터 1999년 12월까지 10여년동안 생활쓰레기 매립장이었던 곳으로 침출수가 발생하지 않는 장점을 최대한으로 살려 박물관을 지었답니다. 우주 속 티끌같은 존재도 안되는 ‘나’라는 사람을 응시합니다. 보잘 것 없고 초라한 존재입니다.

‘어머니의 방’도 꼭 필수 코스입니다. 밭 가운데 쌓아놓은 돌무더기를 제주어로 ‘머들’이라고 하는데 이 머들의 형태로 용암석굴을 만들어 45㎝ 수면 위에 진귀한 용암석 하나를 설치했습니다. 이 용암석은 바다보다 깊고 산보다 높은 모성애의 화신이 된 설문대할망이 사랑하는 아들을 안고 서 있는 모습으로 벽과 수면 위에 비친 그림자가 일품입니다.

전통초가 돌한마을, 오백장군갤러리 등을 둘러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초가집 삼아 바농오름을 또 찍습니다. 항아리를 배경으로도 바농오름을 찍습니다. 아이들과 제주를 찾은 관광객들에게 제주를 보여주고 싶다면 가장 좋은 모범답안 같은 곳이 이곳 돌문화공원이라는 생각입니다. 제주를 한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주변의 풍경마저 제주스럽습니다. 설문대할망전시관을 올해 개관한다니까 그때 한번 더 찾아오고 싶어집니다.

#잠깐 여기서 쉬었다 갈래… 세월호 제주기억관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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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세월호 추모관 내부의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세월호 추모관 내부의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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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추모관에 누군가의 딸이 하늘에 계신 엄마에게 보내는 엽서가 세월호 배에 탄 노란 종이학 뒤에 꽂혀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세월호 추모관에 누군가의 딸이 하늘에 계신 엄마에게 보내는 엽서가 세월호 배에 탄 노란 종이학 뒤에 꽂혀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가 운영 중인 2014-0416 세월호 제주 기억관은 관광객, 도민 누구나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대중적인 기억공간’을 목표로 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2019년 11월에 문을 열었습니다. 아이들이 그토록 오고 싶어하던 제주에 아이들을 위한 기억공간을 만들자는 생존학생 아버지의 제안으로 4·16 가족협의회와 평화쉼터의 협약이 이루어져 운영된다고 합니다.

방명록에 글을 남기려는데 먼저 다녀간 사람들이 남긴 글에 다시 먹먹해집니다. ‘잊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자꾸 잊고 산다. 기억할 것, 함께해야 할 사람들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1999년생 2000년생 아들을 둔 엄마입니다. 가슴에 새겨진 별들, 추모하고자 잠시 들렸습니다. 리멤버(remember) 2014. 잊지않고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10주기에 앞서 미리 방문했습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다시는 없어야 할 일,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벽에는 그날을 시간대별로 기록하고 그 옆에 이렇게 써 있습니다. ‘그날, 모두 구할 수 있었다. 탑승 476명, 희생 304명, 탈출 172명’

세월호때 일반인 희생자들도 있었습니다. 자전거 동호회, 용유초등학교 동창생, 승무원, 선사 아르바이트, 제주 출장 직장인, 제주로 이주하는 가족, 제주 여행객, 세월호 참사 이후 구조작업을 하던 중 사망한 민간잠수사….

하얀 종이배와 노란 종이학 앞에는 하늘로 떠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딸이 쓴 엽서 한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엄마, 나 엄마 딸! 잘 지내고 있지? 나는 잘 지내고 있어. 내 걱정은 하지 마. 엄마, 보고 싶다. 이러다가 엄마 얼굴도, 목소리도, 다 까먹을 것 같아. 엄마가 내 엄마여서 너무 좋았어. 그러니까 더이상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엄마는 아무 잘못도 없으니까…’

글 사진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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