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신학기 돌봄공백… “회사 관둬야 하나”[인구가 모든 것의 모든 것이다]

홍인기 기자
홍인기, 김지예 기자
업데이트 2023-03-28 00:10
입력 2023-03-28 00:10

초등학생 학부모 ‘공포의 3월’

초등 1학년 빠르면 오후 1시 하교
2~4월 육아휴직·단축근무자 몰려
방과후·돌봄교실 탈락땐 퇴사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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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첫째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낸 직장인 황모(41)씨는 3월이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지나갔다고 했다. 아이는 오후 1~2시쯤 하교를 하는데 맡아 줄 사람이 없어 처음 열흘은 가족돌봄휴가(무급)를 써 급한 불을 껐다. 이후에는 도무지 방법이 없어 태권도, 미술, 영어, 체육 학원에 죄다 등록했다. 아이가 하루에 많게는 학원 세 곳을 다니는 ‘강행군’ 일정을 소화해야 했지만 황씨로선 선택권이 없었다. ‘학원 뺑뺑이’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겨우 아이를 데리러 가는 황씨는 27일 “회사 분위기상 육아휴직이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쓰기는 어려울 것 같다”면서 “일을 그만두는 것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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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새 학기인 3월이 되면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돌봄 공백 속에서 휴직하거나 퇴사까지 고민한다. 코로나19 기간에는 재택근무라도 가능했지만 이제는 사무실로 출근할 수밖에 없다 보니 아이를 맡아 줄 ‘이모’를 구하지 못하면 ‘직장을 계속 다닐지, 말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초등학생 학부모에게 3월이 ‘공포의 3월’로 불리는 이유다. 스스로 경력 단절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러한 현실은 출산을 꺼리게 만드는 요인으로 우리 사회가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갈수록 빨라지는 ‘인구 절벽’을 막지 못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체 육아휴직자(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포함)의 30.6%는 3~5월 처음으로 육아휴직 급여를 받았다. 휴직 급여는 휴직을 신청하고 1개월 후에 나오기 때문에 2~4월 휴직자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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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에는 잡히지 않는 가족돌봄휴가(무급 10일), 가족돌봄휴직(무급 90일), 연차를 사용하는 경우까지 합하면 새 학기가 시작돼 일을 잠시 쉬는 직장인은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직장인 허선중(45)씨는 “육아휴직을 쓰고 싶지만 대체 인력도 없고 아무래도 눈치가 보인다”며 “급할 때마다 연차를 쓰는 편”이라고 말했다.

2~4월 육아휴직자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사용이 급증하는 것은 종일 돌봄이 가능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과 달리 초등학교 1학년은 빠르면 오후 1시쯤 하교하기 때문이다. 직장인 윤모(36)씨는 “방과후 교육 과정까지 하더라도 오후 5시면 아이가 하교한다”며 “출퇴근 시간을 감안하면 도저히 제시간에 도착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남편과 번갈아 가면서 학원 마치는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가고 있다는 윤씨는 “아이에게 못 할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육아휴직이나 가족돌봄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부모들도 많지 않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45.2%가 ‘육아휴직 사용을 제약받는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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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후 학교나 돌봄 교실에 탈락하기라도 하면 휴직이나 휴가를 넘어 퇴사를 고민해야 한다. 지난해 돌봄 교실 신청 인원은 30만 5000명이었지만 수용 인원은 29만여명이었다. 정부는 ‘늘봄학교’ 정책을 통해 오후 8시까지 돌봄 시간 연장 방안을 발표했지만, 대도시 같은 과밀지역에서는 오후 5시까지 아이를 맡기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게다가 ‘할머니, 할아버지 찬스’를 쓸 수 없는 경우라면 고민은 더 깊어진다. 직장인 박모(38)씨는 “초반에는 휴직이든, 가족돌봄휴가든, 연차든 써서 버텨 보겠지만 새 학기가 지나도 방법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믿을 만한 도우미를 구하지 못하면 결국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현실은 임신, 출산, 어린이집, 유치원을 거치면서 7년 동안 위기를 넘겨 온 직장맘이 초등학교 1학년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경력 단절을 선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달 직장을 그만둔 김모(38)씨는 “돌봄 교실 이후에도 학원을 2군데 이상 보내야 퇴근 뒤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기혼여성 중 경력단절여성은 17.2%로 139만 7000명에 달한다. 특히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경력단절 비중이 25.3%로 더 높았다. 자녀가 많을수록, 자녀가 어릴수록 경력단절여성의 비중은 더 높았다. 경력단절여성 중 30대(43.0%)와 40대(42.1%)가 많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일을 그만둔 이유도 육아(42.8%)가 가장 많았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육아휴직을 다 사용한 경우이거나 휴직 사용이 어려운 중소기업 등에 근무한다면 결국 퇴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며 “결혼이나 출산보다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직장맘의 경력 단절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인구학자인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엄마에게만 육아를 떠맡기는 이른바 ‘독박 육아’는 우리 사회가 저출산을 강권하는 사회라는 점을 잘 보여 준다”며 “돌봄 교실을 포함해 지역 사회에 부모 육아를 대체할 수 있는 시설이 보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인기·김지예 기자
2023-03-2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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