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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여름/강지이

수정: 2022.08.12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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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살 때 수도원에 입회했다가 깨달음의 한계에 부딪혀 6년 뒤 수도원을 나와 이탈리아에서 회화를 공부했다. 이번 전시에선 뒷모습의 풍경을 그린 회화를 선보이며 가장 본질적이며 인간적인 행위를 설명한다. 서울 종로구 갤러리 마리에서 9월 30일까지.



여름/강지이

그곳에 영화관이 있었다

여름엔 수영을 했고 나무 밑을 걷다 네가 그 앞에 서 있기에 그곳
에 들어갔다 거기선 상한 우유 냄새와 따뜻한 밀가루 냄새가 났다
너는 장면들에 대해 얘기했고 그 장면들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은
것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어두워지면 너는 물처럼 투명해졌다
나는 여름엔 수영을 했다 물 밑에 빛이 가득했다

강 밑에 은하수가 있었다



매해 여름을 살지만 같은 여름은 아니다. 일생 사랑을 하지만 당연히 같은 사랑은 아니듯이. 물속에서 자맥질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여름은 일 년 중 가장 깊고 넓은 생활의 무대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왜 물속이 궁금할까? 생애의 여름인 청춘이면 인간은 왜 사랑이라는 영화관이 궁금할까? 거기에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장면’이 있기 때문이다. 상영이 끝나면 ‘물처럼 투명해’지는 ‘너’라는 영화관! ‘물 밑에 가득한’ ‘빛’을 보느라고 ‘여름엔 수영을’ 한다. 그 맹목(盲目)의 ‘빛’을 어떤 도량형으로 말하랴. 저런! 그것이 밤까지, ‘은하수’를 보는 일까지 이어지다니. ‘너’의 ‘투명’이 짙었음을 문득 알아차린다. 여름은 이미 지나갔으리라.

장석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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