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5·18 순직 경찰 유족과 사건 당사자의 화해

김태이 기자
업데이트 2022-05-19 15:37
입력 2022-05-19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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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의 포옹’
‘화해의 포옹’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시위대 버스를 몰다가 경찰 4명을 치어 숨지게 한 운전자 배 모씨가 19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경찰충혼탑 앞에서 故 정충길 경사 유가족 정원영 씨와 포옹을 하고 있다. 민간인이 주체가 돼 경찰 유가족에게 공식적으로 용서를 구한 자리는 42년 만에 처음이다. 202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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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 만의 사과
42년 만의 사과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시위 진압에 참여했다가 돌진한 버스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경찰 중 고 정충길 경사의 유족인 박덕님(가운데) 씨와 버스 운전 가해 당사자가 19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경찰충혼탑에서 만나 사과와 용서를 하고 있다. 2022.5.19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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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 만에 구하는 용서
42년 만에 구하는 용서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시위 진압에 참여했던 경찰들을 향해 버스를 몰고 돌진해 숨지게 한 버스 운전 당사자가 19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경찰충혼탑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이날 경찰 유족과 가해 당사자의 사과와 화해의 시간을 마련했다. 2022.5.19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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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않는 눈물
마르지 않는 눈물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시위 진압에 참여했다가 돌진한 버스에 의해 죽임을 당한 고 정충길 경사의 유족인 정원영 씨가 19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경찰충혼탑을 찾아 참배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이날 경찰 유족과 가해 당사자의 사과와 화해의 시간을 마련했다. 2022.5.19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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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순직 경찰 묘역 찾은 사건 당사자
5·18 순직 경찰 묘역 찾은 사건 당사자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시위 진압에 참여했던 경찰들을 향해 버스를 몰고 돌진해 숨지게 한 버스 운전 당사자(가운데)가 19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경찰 묘역을 참배하며 사과를 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이날 경찰 유족과 가해 당사자의 사과와 화해의 시간을 마련했다. 오른쪽 두번째는 안종철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 부위원장, 오른쪽은 고 정충길 경사의 유족인 정원영 씨. 2022.5.19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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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지만 미안합니다’
‘늦었지만 미안합니다’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시위 진압에 참여했던 경찰들을 향해 버스를 몰고 돌진해 숨지게 한 버스 운전 당사자가 19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경찰 묘역을 참배하며 사과를 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이날 경찰 유족과 가해 당사자의 사과와 화해의 시간을 마련했다. 2022.5.19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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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지만 미안합니다’
‘늦었지만 미안합니다’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시위 진압에 참여했던 경찰들을 향해 버스를 몰고 돌진해 숨지게 한 버스 운전 당사자가 19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경찰 묘역을 참배하며 사과를 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이날 경찰 유족과 가해 당사자의 사과와 화해의 시간을 마련했다. 2022.5.19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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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지만 미안합니다’
‘늦었지만 미안합니다’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시위 진압에 참여했다가 돌진한 버스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경찰들 중 고 정충길 경사의 유족인 정원영 씨와 버스 운전 가해 당사자가 19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경찰충혼탑에서 만나 사과와 용서의 시간을 갖고 있다. 2022.5.19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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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물지 않은 상처’
‘아물지 않은 상처’ 19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경찰 묘역 앞에서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시위대 버스 치여 숨진 故 정충길 경사 유가족 박덕님 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날 시위대 버스를 몰다가 경찰 4명을 치어 숨지게 한 운전자 배 모씨는 42년 만에 처음으로 민간인이 주체가 돼 경찰 유가족에게 공식으로 용서를 구했다. 202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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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 만에 화해’
‘42년 만에 화해’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시위대 버스를 몰다가 경찰 4명을 치어 숨지게 한 운전자 배 모씨가 19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경찰충혼탑 앞에서 故 정충길 경사 유가족 정원영 씨와 포옹을 하고 있다.
민간인이 주체가 돼 경찰 유가족에게 공식적으로 용서를 구한 자리는 42년 만에 처음이다. 202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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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 운동 당시 시위 진압에 참여했다가 죽임을 당한 경찰들의 유가족과 가해자가 42년 만에 만나 사죄하고 용서하는 자리를 가졌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가 19일 국립서울현충원 경찰충혼탑 앞에서 마련한 자리에는 가해 당사자 배모(77) 씨와 당시 사망한 경찰 4명의 유가족이 참석했다.

조사위에 따르면 1980년 5월 20일 오후 9시 30분께 배씨(당시 고속버스 운전기사)는 시위대의 도청 진입을 차단하기 위해 진압대형을 갖추고 선 경찰들을 향해 고속버스를 몰고 돌진, 함평경찰서 소속 경찰 4명을 숨지게 하고 7명을 다치게 했다.

조사위는 지난해 개정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당시 시위진압 작전에 참여한 계엄군과 시위진압에 투입된 경찰의 피해를 파악하면서 이 사건을 조사했다.

이날 입장문을 읽은 유족 대표 정원영(54) 씨의 차분하면서도 조금씩 떨리는 목소리가 경찰충혼탑 앞을 맴돌았다.

정씨는 “당신(배씨)이 모든 책임자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힘들었다”며 “지금에 와서야 당신의 미안함이 우리에게, 어머님들께, 나아가 아버님들께 무슨 위로가 되겠느냐마는 당신이라고 그렇게 하고 싶었겠는가 하는 마음에 가슴이 아플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과뿐만 아니라 화해의 자리가 돼야 한다는 생각도 이성에서는 일어나지만, 감성에서는 쉽지 않았다. 어머님들은 안 만나겠다고도 하셨다”며 “‘정말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해주셔야만 한다”고 토로했다.

유족 9명과 함께 자리한 가해 당사자 배씨는 충혼탑에 분향·헌화하고 근처에 있는 희생자들의 묘비에서 묵념하는 내내 굳은 표정이었다. 어두운 옷차림을 한 그는 충혼탑 앞에 가만히 서서 몸을 조금씩 떨었다.

배씨는 참배를 마친 뒤 “제가 지금 와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며 “저도 나름대로 그 상황과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싶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 현장을 꿈에라도 한 번 꿔봤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런 것은 도저히 (꿈에) 나오지 않더라”며 “제가 뭐라고 말씀을 드릴 수가 없다. 죄송하다. 막막하고 얼굴을 들 수가 없다”고 고개를 떨궜다.

조사위에 따르면 정 경사와 강정웅 경장, 이세홍 경장, 박기웅 경장 등 희생자 4명은 함평경찰서 소속이었다.

시위가 확산하면서 전남도경 뿐 아니라 지역 일선 경찰서에도 동원 명령이 내려져 희생자들을 포함한 55명이 전남도청 일대에 배치됐다가 이들 4인은 돌아오지 못했다.

배씨는 현장에서 체포돼 재판받으면서 “야간이었고 최루가스가 버스 안으로 들어와 눈을 뜰 수 없는 상황에서 사고를 인지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사형이 확정됐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받았으며 2년여 복역한 뒤 풀려났고 이후 특별사면을 받았다고 한다.

사건 이후 남겨진 이들의 삶은 신산했다. 유족들은 국가유공자 인정을 받고도 매월 3만∼4만원 정도 남짓한 연금 이외에 아무런 보상이 없었으며 일반 시민 위주인 5·18 관련 단체들로부터 외면받았다고 주장했다.

조사위는 배씨를 포함해 이 사건 관련자들을 다시 조사해 당시 상황을 면밀히 파악해볼 예정이다.

조사위는 “이 조사가 끝난 후 어떤 조처를 할 것인지 국가에 권고하게 된다”며 “그에 따라 국가의 합당한 대우와 절차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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