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민주화 마지막 등불’ 꺼진날…마지막호 사려 눈물 속 긴줄

김정화 기자
업데이트 2021-06-24 16:40
입력 2021-06-24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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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홍콩 시내 거리의 가판대에서 시민들이 이날 마지막 신문을 끝으로 폐간한 반중매체 빈과일보를 사려고 길게 줄서있다. 홍콩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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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는 빈과일보는 항상 특별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24일 홍콩 동부 정관오의 빈과일보 사옥에 꽃과 함께 놓인 쪽지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줄곧 당국의 압박을 받아 온 반중매체 빈과일보가 이날을 끝으로 26년 역사를 마감하게 되자 작별을 고하려는 시민들이 줄을 이뤘다.

거리의 신문 가판대에는 전날 밤부터 수백명의 독자들이 모여 마지막 신문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0시 55분경 초판이 도착하자 수십미터씩 늘어선 독자들은 적게는 2~3부, 많게는 10부 넘게 사가며 아쉬움을 달랬다. 12부나 산 한 독자는 공영방송 RTHK에 “오늘은 불행한 날”이라며 “마지막 신문을 동료와 가족들에게 나눠줄 것”이라고 했다.

창간호부터 쭉 신문을 읽어왔다는 한 독자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빈과일보 폐간 이후 감히 목소리를 낼 신문사는 한곳도 없다. 언론 자유는 이것으로 끝”이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남편과 함께 2시간 넘게 걸려 사옥을 찾아온 다른 독자는 “우리는 매일밤 신문을 읽었다. 너무 답답하고 속상하다”면서 “우리는 그저 평범한 시민이다. 뭘 할 수 있겠는가”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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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년 동안 홍콩의 민주화를 앞장서 부르짖은 빈과일보를 아끼는 시민들이 24일 새벽 사옥 앞에 몰려와 마지막으로 발간된 신문 1면을 펼쳐 보이며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고 있다.
홍콩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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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통제에 대한 홍콩인의 불안과 좌절에 주목하며 2019년 반정부 시위에서 주도적 역할까지 한 빈과일보는 중국 정부의 눈엣가시였다. 지난해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홍콩 경찰은 줄곧 신문을 압박했고, 결국 지난 17일 사옥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자산을 동결했다. 신문에 실린 글이 보안법상 외세와 결탁한 혐의를 받는다며 편집국장과 수석 논설위원까지 체포하자 결국 직원들은 폐간을 결정했다.

빈과일보는 마지막 신문을 평소보다 12배가량 많은 100만부 발행하며 인사를 전했다. 1면에는 스마트폰 조명 등으로 사옥 전경을 비추는 한 지지자의 손과 함께 ‘빗속에서 고통스러운 작별을 고한다’는 글자가 새겨졌다. 전날 밤 마지막 인쇄가 시작되자 늦은 시간에도 회사를 가득 메운 직원들은 박수를 치며 눈시울을 붉혔다. 사옥 밖에선 지지자들이 모여 “힘내라 빈과일보”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밤 11시 59분에는 빈과일보의 홈페이지도 서비스를 중단했다. 영문판, 중문판 홈페이지에는 ‘구독자에게 알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안내문만 게재돼 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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