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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식의 슬기로운 과학생활] 과학 교육에 대한 단상

수정: 2021.05.04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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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인식 기초과학연구원 희귀핵연구단장

한국처럼 교육열이 높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우리나라가 단기간에 선진국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도 교육열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가 백년지대계를 좌우하는 교육을 학부모의 교육열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라는 말처럼 교육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돌아가려면 훌륭한 교사 양성이 가장 우선돼야 한다. 필자는 사범대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과학교육, 중등교육, 그리고 사범대 교과과정에 대해 고민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아 여러 안타까운 현실을 직면해야 했다.

그중 하나가 전공 과목과 교직 과목 비중의 불균형이다. 지난 20여년간 지켜본 바에 따르면 사범대에서 교직과목 비율은 지속적으로 많아지는 반면 전공과목은 줄어드는 추세다. 물리교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물리를, 화학교사는 화학에 대해 지금보다 더 많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공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통찰이 선행되고, 거기에 다양한 교육학적 요소가 더해질 때 창의적이고 동기부여가 가능한 과학수업이 나올 수 있다.

교사가 본인 전공에 대한 내용을 깊이 알아야 자연과 생명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학생들에게 과학의 ‘맛’을 알려줄 수 있다. 이를 위해 중등 과학교사 양성을 위한 전공과 교직과목 비율 최적화는 행정기관의 탁상공론이 아닌 현직교사, 과학교육학자, 그리고 전공학자들이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전공과목 내 교육과정 편성도 시대에 맞게 변경돼야 한다. 사범대 학생들은 전공과목 공부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다양하고 깊이 있는 실험, 실습을 통해 전문가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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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근본적인 중등교육 문제는 교사들의 과도한 수업 부담과 입시경쟁이다. 학생들의 교과 선택권이 확대되면서 교사들이 가르쳐야 하는 과목 수는 증가했지만 수업 시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교사들의 수업 부담이 증가해 수업의 질이 떨어질 거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또 필자가 중학생이던 1970년대도 그랬고 현재까지 국어, 영어, 수학 과목의 수업과 입시 비중이 제일 높다. 이 세 과목이 모두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필자는 이제 영어 수업을 점차적으로 줄이자고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

수능에서 영어 과목은 절대 평가로 바뀌었지만 학교 현장에서 영어는 여전히 학생들에게 실용언어 그 자체가 아닌 공부능력을 평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한계와 학생들의 수업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국·영·수’ 중에서 하나를 조금이나마 줄여야 한다면 영어 과목을 선택하자는 것이다. 영어의 중요성이 이전보다 줄어서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영어의 중요성은 이전보다 더 커졌다고도 볼 수 있다. 점점 발달하는 번역기와 AI 통역 소프트웨어도 앞으로 영어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 내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영어 수업을 줄이는 대신 남는 시간은 어떤 과목으로 대체하면 좋을지 행복한 상상을 해 본다. 학생들의 지친 심신을 단련하고 스스로 관심 있는 분야를 찾아보는 시간으로 채우면 어떨까? 예체능, 창의적 체험활동, 진로탐색 등이 좋을 것 같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교육은 큰 밑그림을 그리고 일관성 있게 실행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 ‘아이 하나 키우는 데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대학입시와 얽혀 있는 중고등 교육과정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지만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교육의 현주소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고민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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