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게임 축구로 본 ‘베트남 정체성’
“박항서호 첫 金”… 현지 포상금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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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당시는 우승 국가는 남베트남(월남)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49년 하노이를 거점으로 북위 17도 위를 장악했던 북베트남(베트남민주공화국·월맹)은 이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다. 첫 대회에 나선 것은 과거 친(親)프랑스 세력이었던 관료와 지주 등이 북위 17도 군사분계선 이남을 장악하고 이를 토대 삼아 사이공을 수도로 1956년 10월 건국을 선포했던 남베트남이었다.
노란색 바탕에 빨간색 가로줄이 세 개 그어져 있는 국기를 가진 남베트남은 꼭 20년 만인 1975년 남베트남해방민족전선, 이른바 ‘베트콩’으로 불리는 게릴라 조직과 호찌민이 이끈 베트남민주공화국의 1968년 ‘구정 공세’ 이후 휘청거리다 1975년 사이공 함락으로 패망,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통일 베트남의 주체는 ‘월맹’이었고, 이후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라는 정식 국호를 갖게 됐다.
지난 10일 SEA게임 축구 결승전에서 인도네시아를 3-0으로 제치고 정상에 오른 베트남 국민과 축구팬들은 그래서 60년 만이 아니라 건국 이후 첫 축구 패권이라고 주장한다. 나라 밖에서는 60년 만이라고 부를지 모르지만 그들은 “1959년 우승을 달성한 것은 남베트남 괴뢰 정권 때의 일”이라고 당시의 축구사(史)까지 거부하는 대단한 ‘주체 의식’을 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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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베트남 현지 언론은 문체부 장관이 10억동(약 5150만원)을, 축구협회가 30억동(약 1억 5450만원)을 내놓은 데 이어 민간 기업들도 20억동(약 1억 300만원) 이상을 쾌척하는 등 포상금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2019-12-12 2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