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서 추방 명령받던 佛신부 “빈국 돕는 우리나라, 한국이 좋다”

‘올해의 이민자상’ 르네 뒤퐁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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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일 법무부가 주최한 ‘12주년 세계인의날’ 시상식에서 대통령 표창인 ‘올해의 이민자상’을 수상한 르네 뒤퐁(한국명 두봉) 주교.
법무부 제공

“한국전쟁 직후에 외국의 도움을 받던 한국이 이제 다른 나라를 도와주고, 세계인들이 와서 같이 사는 나라가 됐잖아요. 저 헛수고한 거 아니죠. 이제 됐다 싶어요.”

한국에서 보낸 65년을 회상하던 르네 뒤퐁(90) 주교는 무릎을 탁 치며 호탕하게 웃었다. 지난 20일 법무부가 주최한 ‘12주년 세계인의 날’ 시상식 현장에서 대통령 표창인 ‘올해의 이민자상’을 수상한 뒤퐁 주교를 만났다. 그는 1954년 프랑스에서 선교사로 한국 땅을 밟은 뒤 한국 사람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농어민·여성 교육과 한센병 환자 의료 지원 등에 힘써 왔다.

능수능란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주교에게는 이제 프랑스 이름보다 한국에서 얻은 ‘두봉’(杜峰)이라는 이름이 친숙하다. 두봉 주교는 “한국인 신부가 ‘뒤퐁’ 발음이 어렵다며 발음이 비슷한 ‘두봉’에 ‘산에서 노래 부르는 두견새’라는 의미를 더해 지어 줬다”고 설명했다.

두봉 주교는 1969년부터 1990년까지 안동교구장을 역임하며 ‘안동의 촛불’, ‘한국 가톨릭의 기둥’으로 불렸다. 그는 “무엇이든지 필요한 곳이 있으면 힘닿는 대로 도와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젠 한국이 외국과 외국인을 도와주는 ‘어른’이 됐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만큼 외국과 외국인에게 많이 주고, 그들을 포용하는 시각을 가지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1979년 ‘가톨릭농민회 오원춘 사건’으로 박정희 정부로부터 추방 명령을 받은 적도 있다. 당시 경북 영양군 농민 오원춘씨가 농협에서 제공한 감자 때문에 농사를 망쳤다며 항의한 뒤 보상받은 사실을 알렸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정부가 오씨를 강제 연행했다. 가톨릭교회가 강하게 항의하자 정부는 두봉 주교가 일을 꾸몄다며 추방 명령을 내린 것이다. 10·26 사태로 실제 추방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두봉 주교는 “정부와 맞서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외국인 선교사가 국내 정치 문제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그런 일이 있었다”고 돌이켰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의 마지막 소망은 한국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두봉 주교는 한국이나 한국인을 말할 때마다 ‘우리나라’, ‘우리 민족’이라고 이야기했다. 안동교구장에서 은퇴한 뒤 경북 의성군 봉양면 문화마을에서 살고 있는 두봉 주교는 “내 고향은 프랑스 오를레앙이 아닌 경북”이라고 웃었다. 그러면서 “비록 외국인 얼굴이고 한국어 발음도 완벽하지 않아서 100퍼센트 한국 사람은 되지 못했지만, 스스로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죽을 때까지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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