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보다 피해자 생명이 우선… 가해자 분리하고 강력 처벌해야”

[끊을 수 없는 굴레, 가정폭력] <하> 전문가 ‘가정폭력 근절’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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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신화에서 벗어나야 해요. 가정이 생명에 우선할 순 없어요.” 유승현 전 김포시의회 의장이 아내를 골프채로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되면서 살인으로 이어지는 가정폭력을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감을 얻고 있다. 지난해 서울 강서구 등촌동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처를 살해한 사건이나 잊을 만 하면 나오는 부모의 아동 학대 살해 등 가정폭력으로 인한 살인을 막아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신문이 만난 가정폭력 전문 변호사, 교수, 가정법원 판사, 여성아동범죄조사부 검사, 여성청소년과 경찰, 가정폭력상담소 등 시민단체 전문가들은 가정 해체를 감수할 각오로 가정폭력을 근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정폭력을 범죄로 생각하지 않는 가부장적이고 온정주의적인 인식과 단호하게 결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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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전 의장은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됐다. 만약 아내가 사망하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현행 사법체계 아래서는 폭행치상 혹은 과실치상 사건으로 처리됐을 것이다. 상해 정도가 심각했다면 구속됐을 수도 있지만 결국 집행유예로 풀려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가정폭력 재발 방지를 위한 상담이나 교육은 없고 형사처벌이 전부다. 현행 구조에서는 가정폭력으로 형사법원에서 처벌을 받거나, 가정법원으로 송치돼 상담을 받거나 둘 중 하나다. 형사처벌과 예후 관리가 병행될 수 없는 구조다.

가정폭력 사건을 주로 맡는 이보라 변호사는 “경찰, 검찰, 법원은 물론 피해자의 지인들까지 ‘가족 일인데 왜 법을 끌어들이느냐´는 온정주의적 시각이 팽배해 있다”며 “가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가부장적 가치에 매몰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 지적처럼 가정폭력 관련법부터가 피해자의 생명과 인권보다는 ‘가정보호’를 우선으로 하고 있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는 등 가정보호를 목적으로 설립됐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가부장적 시대의 가치관을 지키느라 피해자에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다 보니 아내와 자녀들이 계속 죽어나가고 있다”며 “가족 간에 죽고 죽이는 것을 방치하는 게 가정을 보호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비판했다.

살인으로 이어지는 가정폭력의 굴레를 끊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것이다. 부부 폭행이라면 가해자를 집에서 퇴거시켜야 하고, 아동 학대라면 부모의 친권을 박탈해야 한다. 분리 이후에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상담이 병행돼야 한다. 조건부 처분을 내려서 가해자가 경계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이 말하는 해법이다. 예를 들어 ‘3~6개월 보호관찰’ 명령을 내린 후 준수사항을 어길 경우 처분을 변경해 처벌하면 가정폭력을 막는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려면 체포와 구속이 필요하다. 가정폭력 특례법에도 경찰이 신고를 받은 즉시 현장에 나가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흉기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체포할 수 없고, 가해자는 임의동행으로 경찰서에 갔다가 조사를 마치면 곧바로 집으로 돌아온다. 원혜욱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이 신고 받고 갔는데 사건 현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등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경우가 있다”며 “한 번 신고했는데 경찰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피해자는 좌절하게 되고, 가해자 폭력은 더 심해지는 악순환에 빠진다”고 말했다.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 업무를 수십년간 해온 한 전문가도 “폭력이 발생하는 순간에 곧바로 분리해야 하는데, 분리가 곧 가정 해체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있다”며 “가정폭력에 ‘체포우선주의’를 도입해야 한다. 체포를 해서 피해자를 보호하고 폭력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의 자립을 위한 경제적 지원도 필수적이다. 유향순 전국가정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지난해 발생한 등촌동 전처 살인 사건의 경우 경제적 자립을 위해 소액이 지원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며 “기본적으로 보호 쉼터가 제공돼야 하고, 경제적 독립을 지원해줄 정책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가정법원의 한 판사는 “선진국은 가장인 가해자가 구속 상태에 이르면 나머지 가족을 위해 생활비를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다”면서 “이런 경제적 지원이 수반돼야 법원에서도 범죄를 저지른 가장을 구속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가정폭력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해 교화 방안을 실효성 있게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가정법원의 또 다른 판사는 “경제적 이유 등으로 가정폭력 가해자가 대부분 가정으로 복귀하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가정법원 조사·상담 인력을 확충하고 보호관찰관 제도 등을 활용해 법원 판결이나 명령 이후 가정을 자주 모니터링할 수 있는 보완책을 두면 재범률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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