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3500번 ‘명품 가위질’… 남자가 완성됐다

김정화 기자
업데이트 2019-02-12 00:23
입력 2019-02-11 22:18

경력 54년 ‘이발 마스터’ 정철수씨

호텔서 근무 땐 총리·재계 총수 등 단골
홍대에 숍 열고 3년간 제자 16명 키워
“젊은층이 찾는 한국만의 바버숍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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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이발소인 ‘찰스바버샵’의 마스터 정철수씨가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자신의 가게에서 손님의 머리를 다듬고 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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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서울 마포구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인근의 ‘찰스바버샵’. 폐점 시간인 오후 8시인데도 손님 머리를 매만지는 정철수(68)씨의 손놀림이 분주했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가위로 다듬어 자르고 드라이기로 말린 뒤 2대8로 빗어 넘겨 포마드까지 꼼꼼히 바르고 나서야 작업이 마무리됐다.

‘바버숍’은 일종의 프리미엄 이발소다. 기존 이발소의 낡은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남성만을 위한 일대일 스타일링과 면도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54년 경력의 이용기능 장인인 정씨가 2015년부터 운영하는 숍도 이런 ‘세련됨’을 추구한다. ‘마스터’인 정씨는 푸른색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나머지 ‘바버’(이발사) 3명은 로고가 새겨진 새하얀 가운을 입는다.

오전 10시부터 정씨가 하루에 맡는 손님은 많아야 10명. 1명의 머리를 만지는 데 1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이다. 보통 미용실이나 이발소에서 성인 남성 커트는 20~30분이면 끝난다. “바리캉 대신 가위만 쓰다 보니 시간이 두 배로 든다”는 게 정씨의 설명이다. 그는 “바리캉으로는 아무리 잘해도 1~2주 지나면 머리가 삐죽삐죽 튀어나오는데, 가위로만 커트하면 자랄 때도 모양이 예쁘게 난다”고 말했다.

그는 “커트 한 번에 3500번 정도 가위질을 한다”고 했다. 쓰는 가위 종류도 수십 가지다. 긴 머리와 짧은 머리용이 다르고, 숱치기용도 따로 있다. 이런 정성 덕에 그의 숍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계산하면서 한 달 뒤 예약을 잡고 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10대 시절 가위를 잡은 정씨는 조선·힐튼·신라 등 일류호텔 이발소에서 일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자연스레 정·재계 유명 인사들의 ‘전용 이발사’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의 손을 거친 국무총리만 정일권, 신현확, 정원식, 한승수 등 4명.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등 대기업 총수도 단골손님이었다. 코오롱그룹은 이원만 초대회장부터 이동찬 명예회장, 이웅열 회장과 이규호 전무까지 집안 4대의 머리를 모두 정씨가 도맡을 정도로 사이가 각별했다.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 홍정욱 헤럴드 회장 등은 아직도 정씨의 ‘손맛’을 잊지 못해 홍대까지 찾아온다.

은퇴할 나이인 환갑을 훌쩍 넘겨 바버숍을 차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이용기능사가 살아남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시내 곳곳의 이발소는 퇴폐 업소라는 편견 때문에 젊은층이 찾지 않죠. 이 때문에 우리 이용 기술은 일본에 비해 수십년이나 뒤처졌습니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바버숍을 만들어 한국만의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을 키워나가는 게 꿈입니다.”

홍대에 숍을 연 뒤 3년이 조금 넘는 동안 길러낸 제자는 16명. 숍이 입소문을 타 유명해지고 이발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달라지며 바버가 되고 싶다는 청년들의 문의가 늘고 있다. 그는 “외국에선 90살 먹고도 일하는 바버가 많다.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활동하고, 돈이 없어서 배우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기술 전수도 해주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2019-02-12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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