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을 찾아/ 삼베짜는 소리에 할머니의 숨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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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1-04-07 00:00
입력 2001-04-07 00:00
‘딸깍 시르릉… 딸깍 시르릉….’ 외딴 마을 창틀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불빛과 함께 나즈막히 들려오던 삼베짜는 소리는 잊혀진 선조들의 숨결소리마냥 정겨웠다.

수백 가닥 삼베 날줄 사이로 한올 한올 씨줄을 엮는 삼베짜기는 우리 할머니들의 일상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여간해서 보기 힘든 잊혀져가는 추억이 된지 오래다. 삼베를 비롯,명주·무명·모시를 짜던 ‘베틀’은 이제 박물관에서나 만나 볼 수 있을 만큼 낯설다.더구나 북(씨줄이 될 실타래를 넣는 홈이 파인 나무통)이니 바디(씨줄을 한올한올 날줄 속으로 밀어 삼베로 엮어 주는 장치)니 말코(짜여진 삼베를 감아 주는 장치)니 하는 부품의 이름은 아예생경하기조차 하다. 60년 이상 삼베을 짰다는 강릉시 사천면 석교1리 김정자(金貞子·82) 할머니는 “지금은 건강이 좋지 않아 베틀을 손에서 놓고 있지만 한 평생을 함께 해온 소중한 친구”라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6∼7년전만해도 한여름이 끝나는 처서(處暑) 때면 마을 아낙네들과 함께 수백리 떨어진 강원도 정선군 갈전리까지 가 질좋은 삼을 사왔다고 말했다.

이렇게 구입한 삼 껍질을 베껴 손질하기 좋게 타래로 엮어 보관했다가 겨우내 껍질을 찢어 거친 실로 엮어(‘삼는다’고 함)낸다.이어 물레를 돌려 만든 갈생의 삼베실을곱게 만들기 위해 잿물 표백작업을 한다.표백된 삼베는 흐르는 냇물에서 씻어야 고운 연노란색의 자태를 띠게 된다.

삼베실은 베틀에 올리기 전 빳빳하게 풀을 먹여 천으로짜여지기 좋게 또한번의 손질을 거치게 된다.이렇게 겨우내 손질한 삼베실로 한사람이 보통 1년에 베 20∼30필(1필 폭 0.45m 길이 15m)을 짠다.



김 할머니는 “손발이 갈라지는 고통을 참으며 꼬박 3∼4일씩 매달려야 삼베실 1필을 짤수 있었다”면 “물레를 돌리며 삼베를 짜는 일은 여자들의 한 어린 고된 작업이었다”고 회고했다. 같은 마을의 김옥래(金玉來·71) 할머니는 “옛날에는 집에서 짠 삼베로 평상복을 만들어 입었으나해방을 전후해 광목과 나일론 등 화학섬유에 밀려 급속히사라졌다”며 “삼베짜기는 이제 산골마을 몇군데서 겨우맥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행히 삼베는 요즘 제례복식이나 수의 등으로 비싸게 팔려 나가고 있다.특히 사천면 석교1리에서 짠 상품 삼베 1필은 올이 성기고 나일론이 섞인 중국산에 비해 10배나 비싼 70∼80만원을 호가한다.

글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
2001-04-07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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