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언내언] 仙桃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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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0-11-09 00:00
입력 2000-11-09 00:00
경주를 웬만큼 아는 사람 가운데도 경주평야 서쪽의 선도산(仙桃山)을 얘기하는 이는 드물다.해발 380m 정도로 높다 할 만한 산은 아니다.해뜰 무렵 산머리에 뽀얗게 안개가 피어오르고 해질녘엔 붉은 물이 들어 보는 이의 시선을 빨아들인다.신라인들은 서술산(西述山),서연산(西鳶山)이라고도 불렀다.요즘 경주 사람들에겐 서악(西岳)으로익숙해져 있다.

신라인들은 이 산을 서방정토로 여겼다.산마루에 아미타여래를 모시고 극락왕생을 기원했다.삼존불이 아직도 남아 신라인들의 숨결을 전한다.돋을새김의 본존불과 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이다.강우방(姜友邦) 전 경주박물관장은 “나의 오랜 경주생활에서 선도산과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이 없었더라면 예술적 체험도,종교적 체험도 그리 깊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그곳을 바라보면 선도산 자체가 아미타여래가 되어 응답한다고 했다.

산의 8부 능선쯤에는 돌로 쌓은 산성이 있다.시루에 테를 돌린 것처럼 산허리를 감고 있다.이른바 퇴뫼식 산성이다.진평왕이 쌓은 것을문무왕이 증축했다는 기록이 있다.산자락엔 태종무열왕릉이 있다.이름 모를 고분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서악동 3층 석탑과 효현동 3층 석탑도 이곳의 유물이다.

작고한 향토사학자 윤경렬(尹京烈)선생은 신라인들의 발길이 닿은산등성이와 골짜기마다 불탑과 부처를 모신 남산을 ‘부처의 땅,겨레의 땅’이라고 노래했다.그리고 땅의 신이 사는 것으로 추앙됐던 선도산을 ‘전설의 땅’이라 했다.일제는 신라문화와 신라정신을 지우기 위해 서라벌의 중심에 경주역을 세우고 선도산 옆으로 철로를 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일제의 간교함을 비난한다.

대법원이 며칠 전 선도산 자락에 병원을 지으려던 한 학교법인과 이를 막으려는 문화재청의 송사에서 문화재청의 손을 들어줬다.“매장문화재 보호를 위해 개인의 재산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전문가들은 매장문화재의 존재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포괄적으로 문화재보호권을 인정한 적극적인 판결이라고 평한다.



토목공사중 발견된 고분때문에 공사를 못하게 된 학교법인의 사정은 딱하게 됐다.부지를 이전할 경우 수십억원의 손해를 입을 것이라는얘기도 들린다.하지만 재판부의 지적처럼 유적보존으로 얻게되는 공익을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한번 훼손된 문화유산은 영원히 복구할 길이 없다.이번 판결이 서울의 몽촌토성 주변 개발등을 둘러싼논쟁에도 ‘교과서’로 원용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태환 논설위원 yunjae@
2000-11-09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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