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해태사유서」 써보셨나요(박갑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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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6-10-09 00:00
입력 1996-10-09 00:00
아침에 딸이 모는 차를 타고 나오면서 방송을 듣는 재미가 있다.며칠전 남녀가 주고받는 얘기.출생신고를 뒤늦게 하러갔더니 「해태사유서」라는걸 쓰라고 하더라는 것이다.그 「해태」라는게 뭐냐고 이죽거린다.『과자이름인가』하면서.쉽게 고칠수 없겠냐는 뜻을 담고서 넘늘고 있었다.「해태」는 「해태」일 것이니 그걸 쓰는 사람들도 모른채 지나치는 경우가 적지 않을듯하다.

이말과 함께 떠오르는 것이 시내버스 돈넣는 통에 쓰인 글씨­「현금승차시 410원」이다.버스 타는 사람들이 「해태…」보다는 잘 이해할것 같다.하지만 이역시 생각의 갈래는 「해태…」와 다름이 없다.한문투를 한글로만 옮겨놓았을 뿐이기 때문이다.그에 갈음해서 「돈내고 탈때,돈내고 타려면,돈으로는」같이 표현한다면 얼마나 더 한글스러워지겠는가.

이런 현상은 신문에서도 흔히 본다.요얼마사이 신문들은 눈에 띄게 한글만 쓰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그건 바람직스런 바라 하겠으나 한글로만 적었다뿐 「해태사유서」「현금승차시」의 테두리에서 맴돌고 있음은 안타까운 대목이다.

세미나나 회의는 꼭 「개최」해야만 하는가.「열」면 안되는 것인가.반드시 「가격인상 인하」라야 되고 「값오르고 내리면」 안된다는 걸까.「크게 늘어(불어)나」면 안되고 「대폭증가」라야만 그뜻이 나타난다고 할일인가.「없애」고 「거둬내」면 될걸 가지고도 굳이 「제거」라고들 쓴다.「30% 육박할듯」 대신 「30%에 이를듯(다가설듯)」으로 쓰면 어떻겠는가.조금만 도슬러 마음먹으면 쉽고 부드럽게 풀어갈수 있을것 같건만.

「신생」「신곡」 썼던 단테.그는 문학가로서보다 정신의 지도자로서 더 위대했다.라틴어라고 하는 통일언어의 벽을 뚫고 토스카나(피렌체) 방언으로 작품을 썼던 것이 아닌가.그건 당시로서는 뼈진 「반역」이었다.혁신의 용단이었다.그는 「신생」속에서 이렇게 말한다.『속어­방언(라틴어 아닌말)은 돈이나 명예의 말이 아니라 사랑의 말이다.라틴어 모르는 여성도 아는 말이기 때문이다』.그로해서 이탈리아말은 다글다글 다져져 오늘로 이어져 내려오는터.단테의 「내것」 살리기 줏대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똥겨주는 바가 크다.

공휴일에서도 떨어져나간 550돌 한글날을 맞는다.이 써늘한 아침,한글을 한글답게 가꾸는 일이 배달겨레를 배달겨레답게 그루앉히는 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칼럼니스트〉
1996-10-09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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