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기유출과 기업정신/임춘웅 논설위원(서울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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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6-07-27 00:00
입력 1996-07-27 00:00
우선 보도를 보면 국방부내에서도 관련분야의 핵심인사들만이 접하게 돼있는 2급비밀이 7건이나 유출됐고,3급비밀과 대외비및 기타 군관계서류를 합하면 유출문건이 자그만치 1백20여건에 달한다.더구나 그중에는 92년 유출된 것도 있다.군기밀이 유출되고도 4년이나 지나쳤다는 얘기가 된다.드러난 경위는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한다.빼내진 중요한 군사기밀들이 라면박스에 방치돼있었다.기밀에 대한 기업이나 군의 의식이 어떤 것인지 묻지 않을수 없다.
국가간에는 서로 상대의 군사기밀을 빼내려는 스파이 활동이 치열한게 공공연한비밀이다.국가와 국가간,특히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국가간에는 스파이전도 전쟁의 일환이다.그래서 국가간 스파이전은 국제사회에서 공인된 하나의 상식처럼 돼있다.우리가 스파이영화를 즐겁게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정부를 상대로 그나라 민간기업이 스파이활동을 해왔다면 전혀 차원이 다르다.국가의 군사기밀은 1개 민간기업이 빼낼 대상이 아니다.그것은 기업의 도덕성 이전에 명백한 범법행위일뿐 아니라 이적행위 일수도 있다.
삼성은 93년 삼성전자간부들이 명찰을 위장하고 금성사 창원공장에 들어가 냉장고제품의 누수방지를 위한 기술을 훔치려다 발각된 일이 있고 94년에도 삼성중공업 직원들이 한국중공업에 숨어들어가 크레인기술을 훔치려다 들킨 일이 있다.그런 삼성이 이제는 국가를 상대로 군사기밀을 빼내오다 들통이 났다.
왜 이런 일들이 유독 삼성에서 일어나는가.굳이 좋게 보려는 사람들중엔 투철한 기업정신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으나 이것은 기업정신의 비열한 왜곡이다.기업정신은 정당한 경쟁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불법과 부도덕을 통한 치열성은 기업정신이 아니다.
그러나 삼성측은 사건이 터질때마다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이번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온국민이 분개하고 있는데도 삼성은 대국민 사과성명 하나 내지않고 있다.재판을 받아봐야 할게 아니냐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기업은 적법성여부 이전에 사회적 책임이 있는것이다.
사건이 밝혀진후 엊그제까지 함께 일하던 동료가 찾아와 부탁하는데 거절할 수가 없었다고한 한 관련장교의 말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대한민국의 군중견장교의 의식수준이 겨우 이정도인가 놀라지 않을수 없다.
이번 사건은 군의 기밀관리,취급자관리가 얼마나 엉성한가를 적나라하게 세상에 알려주고 있다.그런데 군당국이 이번 사건을 덮어두려하고 있다는 인상을 풍기면 곤란하다.그렇게 되면 군은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게 된다.군이 명예를 되찾으려면 문제를 덮으려할게 아니라 사건의 전말을 철저히 규명하고 관련자들을 엄히 가려 법에따라 응징하는 단안을 내려야 할것이다.그것만이 최선의 방어책임을 알아야한다.보다 원천적이고 중요한 문제는 이번 사건이 군조직이나 방위산업전반,군기밀보안체계에 어떤 피해를 주었는지를 상세히 조사하는 일이다.그래서 군은 그 조사결과를 가감없이 받아들이고 귀감으로 삼아야한다.보안 보안하며 쉬쉬할 성질의 일이 아니다.사건은 사건자체 보다 그 사건이 그 조직이나 사회에 어떤 교훈을 남겼느냐에 따라 약이 될수도 있고 독이 될수도 있는 것이다.이번 사건이 군과 한국의 기업윤리에 일대경종이 된다면 이사건으로 전화위복이 될수도 있는 일이다.
그리고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러있는 부정경쟁방지법을 독일이나 일본처럼 구체적이고 엄격하게 개정할 필요가 있다.다음으로는 군의 보안관계법들을 재정비해야할 것이다.방산업체와 군납업체에 대한 등록요건을 강화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기업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바로 인식하게 할것인가 하는것과 군의 교육,군의 사기이다.기업이 게임에만 몰두해있고 군장교들이 내일에 대한 확신이 없이 불안해 해가지고는 관련업체의 유혹을 이겨내기 어려울 것이다.
1996-07-27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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