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고속전철·경마장 건설 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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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5-03-24 00:00
입력 1995-03-24 00:00
◎반대/“천년 고도 훼손은 역사에의 거역/손곡동·물천리 일대 매장문화재 수두룩/김종철 계명대학교 박물관장

경주는 신라 천년의 고도로서 민족문화유산을 그만큼 잘 간직한 도시가 세계적으로 흔치 않다.해마다 6백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는 까닭도 보문관광단지와 같은 위락시설이 있어서가 아니다.불국사,석굴암,다보탑,석가탑 등의 조형미술품과 무수한 능원이라는 우리의 문화재가 널려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경주는 원상이 훼손되어서는 안된다.오히려 원상대로 복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이러한 상황에서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경주가 하루가 다르게 파괴되어 가고 있다.더구나 경주에 경마장이 들어서고 경부고속전철이 지나가게 되었다는 소식은 큰 충격을 안겨준다.선진국에서도 고도산업화 과정에서 일찍 문화재나 문화유적 보존과 개발정책이 서로 맞부딪쳐 시행착오를 겪는 일을 얼마든지 보아왔다.그러나 거의가 문화재 보존차원에서 개발정책은 수정되었던 것이다.

경마장 부지로 선정된 경주시 손곡동과 물천리 일대는 어마어마한 양의매장문화재가 묻힌 지역이다.그래서 부지선정부터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경주문화재연구소가 지난해 실시한 지표조사에 따르면 고분7군데,토기 가마떼 2군데,기와가마와 건물터 1군데가 있다.지표조사가 이럴진대 지하에는 더 깜짝 놀랄만한 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신라의 서울 경주는 아주 짜임새 있고 깨끗한 고대도시였다.「삼국사기」에 보면 도시가 더러워질세라 숯으로 밥을 지었다는 기록이 나온다.그러한 도시발달 과정을 보여주는 취락지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지역도 바로 경마장 건설 예정부지에 들어 있다.5세기말에서 6세기초,숯불로 밥을 지어먹던 때보다 이른 지증왕,법흥왕대에 중앙집권적 고대국가로 탈바꿈하는 시기의 문화유적지인 것이다.

경마장 부지면적은 29만평이라고 한다.거기에 진입로 2개노선이 개설되고 그 부대 위락시설을 갖출 경우 자연환경과 인문환경 파괴는 엄청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마장 건설을 강행하려는 의도 뒤에는 마사회 수입과 지방세수 증대가 맞물려 있다.그러나 천년고도의 문화파괴는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거역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경부고속전철의 경주권 통과노선 길이는 32㎞로 되어있다.경주 북서부인 금장리와 석장리를 거쳐 북녘들 탑정동을 지나게 되면 수많은 지상유적과 지하유구가 제모습을 잃는다.그리고 이 경부고속전철은 경주를 동서로 갈라놓는 분할선 구실을 할 수밖에 없다.신라의 성산이자 성지인 성도산과 남산을 비스듬히 걸치고 지나갈 시멘트 고가전철을 상상해 보라.흉물로 떠오를 뿐이다.

신라인들은 천년의 시공을 뛰어넘은 오늘 아무도 살아있지 않다.다만 그들이 남겨놓은 문화유산이 있을 뿐이다.파괴된다 해도 그들이 살아나와 다시 만들어주지 않는다.자연환경 역시 신이 다시 복원하지 않을 것이다.

◎찬성/“침체된 지역경제 살릴 유일한 길”/경마장 세수 연4백억… 시재정 크게 보탬/김성수 경주상가발전협 회장

경주시민들은 요즘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있다.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자랑 삼기는 커녕 강요당하는 「재산권 행사 제한」의 희생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경주에 설치키로 오래전에 결정됐고 이미 사업 착수단계에 이른 경주경마장과 경부고속전철 경주역사의 설치반대 주장이 외부에서 제기되면서 우리는 허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같은 사업은 대통령의 공약사업이기도 하거니와 침체의 늪에 빠진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기 때문이다.

특히 경주경마장은 연간 4백억원상당의 지방세 세수가 예상되고 있는 만큼 궁핍한 시재정 탓에 점차 슬럼화되고 있는 도시의 면모를 바꿔 놓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경부고속전철의 경우도 최근 줄어들고 있는 외국관광객들의 획기적인 유인 뿐 아니라 신라문화의 세계화에도 이바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럼에도 최근 일부 고고학자들이 『이같은 구조물을 설치할 경우 문화재 보존에 어려움이 있다』며 사업철회를 요구하는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하고 서울에서 관련세미나까지 연 것은 경주지역의 실정을 무시한 너무나 무책임한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이들 학자들은 그동안 경주 남산에 교도소가 설치되고 경주 인근에 핵발전소와 산업쓰레기처리장이 들어설 때는 한마디 의견도 내비치지 않아 우리의 섭섭함을 더해주고 있다.

이들 시설물에 대한 경주시민의 강력한 유치 주장은 그동안 문화재 보존을 위해 희생당한 각종 재산상의 피해를 보상하라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세계속의 경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너무나 중요한 사업이고 21세기의 경주를 담보하는 사업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들 학자의 주장은 계획 입안과정에서 충분히 검토되지 않을 수 없는 사안인 데도 이같은 문제점을 뒤늦게 제기하는 것은 국민들로하여금 혼란에 빠뜨리게 할 우려가 있다.

또 당국에서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국민들은 당국의 정책입안 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찬란한 경주 문화재는 우리나라 뿐만아니라 세계의 자랑이다.

요즘 논란을 빚고 있는 경마장은 경주 외곽지인 손곡동에 위치하게 된데다 지표조사 결과 발견된 각종 유구도 이미 발굴계획이 세워져 있다.또한 고속전철의 경우도 문화유적을 조금이라도 손상하지 않기 위해 지하노선 설치를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처럼 너무나 많은 규제와 피해에 시달려온 경주시민들은 이들 학자의 이번 주장도 시민들의 기대와는 동떨어지게 정책에 반영되지나 않을까 솔직히 말해 걱정이 앞선다.

정부는 하루빨리 명쾌한 해명으로 경주시민들을 안심시켜 주기 바란다.
1995-03-24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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