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만도 못한…”/김문수(일요일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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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06-05 00:00
입력 1994-06-05 00:00
임어당의 수필 「중국의 개 이야기」에 「우룡」이라는 개가 소개되어 있다.

중국의 삼국시대 제씨가 기르던 그 개는 늘 주인을 따라다녔다.그러던 어느날 제씨가 술에 곯아떨어져 교외의 들판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그런데 때마침 그 지방의 태수가 사냥을 나와 들판에 불을 질렀다.우룡은 위험을 느껴 주인의 옷을 물어 당기는 등 온갖 방법을 다 썼으나 허사였다.우룡은 할수없이 그곳에서 25m쯤 떨어진 웅덩이로 가 온 몸에 물을 묻혀 주인 주변에 뒹굴어 잔디밭을 적셨다.그런 일을 수없이 반복했으므로 들불은 제씨가 누워있는 곳까지 번지지를 않았다.

이튿날,제씨가 눈을 떴을 때 이미 우룡은 지쳐서 죽어 있었고 사방이 불에 타 있었으나 자기가 누워 있는 주변만은 물에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그는 우룡이 자기를 살려 놓고 죽은 것을 알고 목놓아 울었으며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태수에게 탄원하여 사람처럼 관에 넣어 정성껏 장례를 치렀다.그 무덤이 지금도 제남이라는 곳에 남아 있다고 한다.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와 똑같은 내용의 전설이 우리나라에도 곳곳에 널려있고 무덤 앞에는 의구총이라 새겨진 비석까지 세워져 있다.경북 선산군 도개면의 의구총을 비롯하여 전북 임실군 오수면,전남 낙안읍성,충남 부여군 홍산면에도 있다.이북에도 평남 용강군,평양 선교리에 이런 의구총이 있다고 한다.

이렇듯 똑같은 전설을 지닌 의구총이나 의구비 또는 의구탑이 곳곳에 널려 있으니 그 전설의 사실성 여부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우리나라의 의구총들이 중국의 「우룡」이라는 충견의 얘기를 모방한 것이라면 왜 모방했으며 또 왜 전국 곳곳에 그런 무덤들을 만들게 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충견의 이야기를 매개로 백성들에게 충효사상을 진작시키려는 목적의 가짜 의구총,가짜 의구비일 수도 있겠고 또는 그곳에서 개만도 못한 사람이 어떤 사건을 일으켰기 때문에 그 고장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어넣기 위해 국가시책으로 세우게 했을 수도 있다는 추리가 가능하다.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여러곳의 의구비,의구총,의구탑이 지닌 전설이 그토록 똑같을 수가 있단 말인가.만약 그렇다고 한대도상속을 노리고 부모를 살해한 박한상의 이 천인공노할 패륜과 같은 사건은 아니었을 것이다.아마도 박한상은 역사 이래 가장 극악무도한 패륜일 것이다.

그가 범죄를 저지른 때가 어버이날이 들어 있는 가정의 달 5월임을 생각하면 더욱 더 몸서리가 쳐진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원인에 대해 황금만능주의,교육부조리,과보호,도피성 외국유학 등을 들어 입을 모으고 있다.필자도 물론 동감이다.그러나 나는 그런 원인에다 또 한가지 중요한 원인을 덧붙이고 싶다.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사회가 조장한 잔인성이 바로 그것이다.

어릴때부터 전자오락실에서 몸에 배게 만드는 잔인성,영화관에서의 그 잔인한 살인장면… 그렇게 자란 아이들의 심성이 어떻겠는가.

기성세대들은 가난했을망정 자기네가 자라던 옛날이 좋았다고 말한다.그러나 그 시절이 반드시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다 좋았던 시대는 아니다.또 인류는 과거의 역사나 문화에만 집착할 수가 없는 것이다.나라의 장래를 위해서 고도의 기술진보도 필요하며 산업화도 필요한 것이다.다만 그 기술과 산업의 그늘 때문에 미풍양속이나 전통문화가 고사하는 것이 탈인 것이다.도덕적 향상이 뒤따르지 않는 산업·기술의 발달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공자의 말씀대로 「하늘이 친 그물은 하도 커서 엉성한 것 같지만(천망회회)그 그물을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은 없기(소이불루)」때문에 극악무도한 패륜이 밝혀졌지만 앞으로 또 이런 패륜이 저질러지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물론 대부분의 신세대들의 삶은 밝고 믿음직스러워 기성세대들로 하여금 문자 그대로 「후생가외」를 느끼게 하지만 이렇듯 존경스러운 마음이 아닌 「후생가공」을 느끼게 한다면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후생들에게 공포를 느끼지 않으려면 그들의 덕육이 최우선이다.<소설가>
1994-06-05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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