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편제」/“한의 형상화 미흡” 새로운 평가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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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3-07-07 00:00
입력 1993-07-07 00:00
요즘 극찬속에 장기상영되고 있는 「서편제」는 정말 모두가 갈채를 보낼만큼 가치있는 영화일까.행여 매스컴과 일부 전문가들의 일방적 찬탄이 선입견이 되어 흠이 없는 수작으로만 느껴지는 것은 아닐는지. 이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서편제」를 감상하는 것도 재미를 더할수 있다.최근 이 영화에 대해 젊은 영화평론가들이 제기한 비판적인 시각과 영화속에 감춰진 이야기들은 그런 점에서 한번쯤 눈여겨 볼만하다.이들은 이 영화가 궁극적인 주제라 할수 있는 한의 형상화에 설득력있게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화평론가 김영혜씨(35)는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서 『서편제가 남도민의 소리에 왜 한이 깃들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데는 미흡하다』고 주장했다.술집이나 장터를 전전하며 소리품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장면들이 고단한 삶으로 느껴질지언정,고단한 삶 자체가곧바로 한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또 딸 송화의 한도 『조실부모하고 눈까지 먼 너만큼 한이 깊은 사람이 없을 터인데 왜 한맺힌 소리가 안나오느냐』고 나무라는 아버지 유봉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한이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서만 강조될 뿐 영상을 통해서는 설득력있게 와닿지 못한다는 논지를 펴고 있다.
이와함께 김씨는 영화에서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핏줄이라고는 조금도 섞이지 않은 유봉 송화 동호사이의 미묘한 애정관계가 빚어내는 갈등을 읽어내는 것도 재미를 더해줄 것이라고 덧붙이고 있다.특히 유봉이 약을 먹여 송화의 눈을 멀게 하고 절 근처 집에 자리잡은 뒤 카메라가 잡은 송화의 머리가 땋아내린 머리채가 아니라 여인을 상징하는 올림머리인 것은 유봉과 송화가 단순한 부녀지간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장면이라는 설명이다.또 장터나 요리집의 술꾼들 앞에서 송화가 소리품을 팔때 카메라가 항상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는 아들 동호의 모습을 잡은 것도 송화에 대한 염려와 안쓰러움,유봉의 무능에 대한 불만을표출하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동국대 연극영화과 정재형교수(34)도 「민족예술소식」 제1호에서 『주제의식으로 설정된 민중의 한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했다』면서 『민중의식의 성장과 더불어 계속 변화하는 판소리의 속알맹이,즉 주제의식인 민중성이 결여됐다』고 밝혔다.그는 『정작 한을 간직한 측은 영화속의 인물들이 아니고 옆구리만 찔러도 터져버리는 울음보따리를 서너개씩 갖고 있는 관객들』이라고 비아냥 댔다.
물론 이들도 『오늘의 한국영화를 가장 뛰어나게 대표하는 작품』,『우리의 정서와 정신이 표현된 점은 획기적인 일이며 최대의 미덕』이라는 대전제를 깔고 있다.그럼에도 이들은 『자기도취에 빠지거나,불량 아류영화가 양산되는 것을 막고 우리 영화의 현위치를 객관적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공과를 명확히 따져봐야한다』며 이같은 논지를 폈다.<황진선기자>
1993-07-07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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