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와 향응/정희경 전 계원예고교장(굄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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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2-02-26 00:00
입력 1992-02-26 00:00
얼마전에 관악산에 있는 한 암자에서 야외취사가 금지되어 끼니 때우기 어려운 등산객을 위하여 무료로 점심대접을 하고 있다는 흐뭇한 소식이 신문지상에 보도되었다.옛절을 찾아들면 으레 볼 수 있는 것이 작은 배(주)만한 나무그릇이 옛날에 국을 담는데 쓰던 그릇이었다 하고,밥을 짓던 엄청난 크기의 무쇠솥을 볼 수 있어,불가에서의 끼니의 보시가 어떠하였던가를 짐작케 한다.무릇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인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일은 불가만이 아니라 어떤 종교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바다.기독교에서의 오병이어(오병이어)의 기적 또한 그런 연유에서였다.그리고 우리 옛날 인심으로나 또는 가르침에서도 접빈객의 도리는 길가는 배고픈 나그네를 그저 돌려보내지 말아야 할 도리를 강조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우리 일상 문화에는 먹는 일이 매우 두드러진 것도 사실이다.TV극을 보아도 웬 먹는 장면이 그리도 많은지 츱츱할 정도로 먹는 일이 많다.우리 주변의 크고 작은 행사에도 먹는 일이 어쩌면 그리도 중요시되는지,잔치에는 잔치여서,궂은 일에서까지도 『잘 차렸드냐』가 관심사일 정도다.그것은 정치선거판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유권자들에게 푸짐하게 먹을 것을 베푸는 일이 언제부터인지 우리 선거판에 끼어들면서 선거철이 되면 아예 동네 음식점이란 음식점이 모두 눈에 불 밝히고 선거관련 향응의 잔칫상을 끌어 당기기에 바쁘다는 얘기가 오가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어느 후보네는 걸판진 뷔페를 냈느니 스테이크를 냈느니 어떤 후보는 쩨쩨하게 탕 한 그릇으로 때웠느니 하는 참담한 얘기가 오가는 게 선거판 풍습으로 자리잡아 왔다.이번 선거를 공명선거로 돈 안 드는 선거로 치르자는 소리도 높지만,그에 못지 않게 아랑곳하지 않는 향응이 걸판지게 번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 아닌가.아! 슬프다.부끄럽다.보시와 향응은 그 근본 뜻이 전혀 다르지 않은가.먹는 문화 한번 바로 잡지 못하는 우리네 몰골이 왜 이리 부끄러운지.이젠 우리도 먹는 일에 츱츱할 정도로 가난하지도 배고프지도 않다는 인식이 바로 박혀야 향응선거의 불명예를 씻을 수 있을 것 같다.
1992-02-26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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