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석의 「조선사람 욕망」론(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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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2-02-22 00:00
입력 1992-02-22 00:00
6차 고위급회담의 감성적인 핵심은 뭐니뭐니 해도 「동시중계」였다.오래 사노라면 어떤 놀라운 변화도 맛보게 되리라는 실감이 들게 했다.지구상에서 「갈수도,볼수도 없는 유일한 곳」이었던 폐쇄의 땅에 카메라가 직접 들어가 쏘아주는 화면을 우리는 우리의 안방에서 「동시」에 바라볼 수 있어서 놀랍고 신기했다.

그러나 이 「동시중계」를 통해 우리가 목격한 정작 놀랍고 신기한 것은 따로 있었다.김일성주석이라는 사람의 이른바 「조선사람의 욕망론」이다.

『…조선사람 욕망은 흰쌀밥에 고깃국 먹고 기와집에 비단옷을 입으면 다야』­봉건시대적인 가부장의 권위를 갖추고 적당히 반말이 섞여진 투로 말하는 그의 육성은 한가하고 유장하기까지 하다.

이 말이 정원식총리의 고향인 황해도 재령과 그곳 특산인 「쌀」의 화제가 발단이었음을 우리도 안다.그러나 김주석은 신년사에서도 이 말을 했었다.「흰쌀밥에 고깃국을 마음 놓고 먹게 해주겠다」는 것이 그가 92년을 위해 내보인 공약의 골자였다.

한반도에 사는 7천만 「조선사람」중 4천5백만의「욕망」은 「이밥에 고깃국」수준을 한참 넘어서 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그는 모르고 있는 것인지,알아도 짐짓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 알수가 없다.아마도 그를 「어버이」로 섬기는 백성들의 욕망을 기준으로 한 발언일 것이다.

우리는 김주석의 이런 발언대목에서 허망하고 맥이 풀리는 난감함을 맛본다.그것은 우리 남측이 북에 비해 이밥에 고깃국쯤 아무렇지 않을 만큼 유족하다는 것에 대한 얄팍한 우월감을 표하려는 뜻이 아니다.

최근의 뉴욕 타임스는 「식량난으로 산에서 풀을 캐먹는 사람도 많다」는 북한의 실정을 보도했다.「우리의 북한」에 대한 이런 화제가 남의 나라 언론에 등장하는 것이 우리는 괴롭고 속상하다.식량배급을 기다리다가 지친 주민들이 밤이 되면 웅성거리며 폭동의 징후를 보인다는 북한 소식도 우리는 접하지만 그 또한 걱정스러우면 걱정스러웠지 유쾌하지 않다.육친이나 동기간에 대한 연민같아서 걱정스러울 뿐이다.

「통일」이 민족의 희망이고 목적인 것은,더불어 하나가 되어 살아갈 것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가 엇비슷하게 맞출 수 있는 키가 되어야 한다.「이밥에 고깃국」을 「조선사람의 욕망」정도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과 「저지방 저칼로리」가 CM송으로 왕왕거리며 거실을 울리고 있는 남쪽 사람들이 교류를 하자면 그 정서적 낙차의 폭이 너무 크다.어느날 느닷없이 그 낙벽과 부딪히게 된다면 피차에 겪을 당혹과 낯섦이 감당하기 어렵게 될지도 모른다.오로지 「주석 어버이 섬기기」에만 목숨 바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최고인 「기와집과 비단옷」이 「뉴 키즈 온 더 블록」에 열광하는 청소년과 만났을 때의 문화적 충격은 무엇으로 메울것인가.통일의 현실은 그런 과제를 추궁할 것이다.문화와 예술,일상의 삶의 형태들을 조금씩이라도 접근시키는 것이 이 낙차를 줄이는 댐의 역할을 해줄 것이다.남북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일들은 쌓이고 쌓여 있다.「쌀밥」타령만으로는 아득하고 답답하다.
1992-02-22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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