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고시생 문제(중)고시는 떠나도 고시촌 못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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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9-09-13 00:00
입력 1999-09-13 00:00
“헌법소원이라도 내겠다” 내년에 첫 도래할 1차 사법시험 응시제한 규정(4회까지만 응시 가능)이 적용되는 고령 고시생 A씨(41)의 각오다.

그는 외국의 유사사례까지 꿰고 있었다.응시횟수 제한 법규가 독일에선 합헌이나,우리와 풍토가 유사한 일본에선 위헌 판정을 받았다는 귀띔이다.

그가 고시에 매달리는 것은 3차례의 1차 시험에서 아슬아슬한 점수로 낙방한 아쉬움 때문만은 아니다.진로 전환을 하고 싶어도 다른 장애물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사법시험에 인생을 걸다시피한 다른 고령 고시생 Q씨는 “청춘을 송두리째 받친 게 억울해서 이 바닥을 떠나지 못하겠다”고 털어놓는다.“고시촌에 호프집이라도 차려서 고시에 투자한 돈의 일부라도 건지고싶다”고 솔직한 심경을 토로한다.

이처럼 고시계에서 명예롭게 퇴역하는 길을 찾기란 쉽지 않다.우리 사회의노동시장 진입장벽이 너무나 높기 때문이다.능력보다 연공서열이나 연고를중시하는 풍토도 그 하나다.

고령고시생에 관한 정확한 통계는 제대로 파악돼 있지 않다.더욱이 고령 고시생들의사회진출 통계는 전무하다.고령 고시생문제가 엄청난 사회문제로비화하고 있음에도 관심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다만 행정자치부의 연령별 수험생 통계로 고령고시생의 실태를 미루어 짐작할수 있다.97년 사법시험 합격자를 보면 502명중 20대가 330명,30대가 169명,40대가 3명이었다.30대의 경우도 35세 이전이 153명이었고,40대 3명은 계속 공부해온 사람도 아니고 다른 직업에 종사하다가 뒤늦게 시작한 사람들이었다.올해 사법시험 1차의 경우 2만3000여명이 응시했다.이중 30대 이상 연령층의 비율은 32.8%를 차지했으나,합격자의 비율은 이보다 적은 25.7%에 그쳤다.공부를 10년이상 한다고 반드시 합격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도 아님을알 수 있다.

문제는 고령고시생들의 ‘퇴로’가 극히 좁다는데 있다.공사에 다니다 지난 93년 고시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해 돌아온 P씨는 “다시 공사로 돌아갈수도 새로 대기업체에 들어갈 나이도 지나 고시를 계속하는 것 이외에 다른대안이 없다”고 어두운 표정이다.

응시제한에 걸리면 자격증시험이라도 볼 심산이다.하지만 이 또한 만만찮은 길이다.모법학원 C부장은 “사시 준비생들이 흔히 응시하는 법무사나 감정사도 어렵긴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대기업에 들어가자니 취업연령 제한이라는 넘을 수 없는 벽을 만난다.중소기업에선 나이어린 후배와 눈높이를 맞출 수 없어 도중하차하기 십상이다.



때문에 고시학원 강사나 고시생을 상대로 상권이 형성된 신림동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정도가 흔한 케이스다.신림동의 한 고시학원에서 형법을 강의,그바닥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B씨의 경우는 그나마 성공사례다.

구본영기자
1999-09-13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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