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고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까까머리 청년’ 시절

업데이트 2019-12-16 13:42
입력 2019-12-16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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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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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LG전자의 미국 헌츠빌 공장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구자경 LG 명예회장 가족. 왼쪽부터 구본무 LG 회장의 부인 김영식씨, 구 회장, 구 명예회장 부인 하정임씨, 구 명예회장. 당시 30세였던 김영식씨의 ‘맵시’가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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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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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구자경(具滋暻) 명예회장이 1987년 제26차 전경련 정기총회에서 18대 회장에 추대된 뒤 고 정주영 전임회장으로터 축하를 받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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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경 명예회장의 단란했던 한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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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경 LG 명예회장과 부인 하정임 여사가 지난 5월13일 서울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가진 회혼례에서 두 부부의 흉상을 덮은 천을 걷어내고 있다.2002.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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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경 LG 명예회장이 2012년 4월 24일 서울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자신의 88번째 생일을 기념하는 미수연을 열고 가족과 축하떡을 자르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구본무 LG 회장 부부, 구자경 명예회장, 구본무 회장 장녀인 연경 씨와 사위 윤관 씨, 뒷줄 왼쪽부터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부부, 구본무 회장의 장남인 구광모 (주)LG 상무,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부부,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 부부. L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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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9년 구자경(가운데줄 왼쪽에서 두번째) 명예회장의 75회 생일을 맞아 가족들이 서울 성북동 구 명예회장 집에 모여 찍은 기념 사진.구 명예회장 오른쪽이 부인 하정임 여사다.뒷줄 왼쪽부터 3남 구본준 LG필립스LCD 부회장,2남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맏사위 고 김화중. 장녀 구훤미. 왼쪽 여섯번째부터 차녀 구미정. 장남 구본무 LG회장. 부인 김영식. 오른쪽 끝은 둘째 사위 최병민 대한펄프 회장. 그 왼쪽은 4남 구본식 희성전자 사장.나머지 둘째 셋째 넷째 며느리와 손자.손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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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경 LG 명예회장 200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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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여름 강원도의 한 목장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구자경(왼쪽) 명예회장과 구본무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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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경회장 故허준구씨 조문
구자경회장 故허준구씨 조문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30일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고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의 빈소를 찾아 평생 사업의 동반자였던 고인을 조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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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경 LG 명예회장 200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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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는 6일 구자경(具滋暻) 명예회장의 경영활동을 담은 화보집 ‘우리 시대 참 경영인 具滋暻’(사진 아래)을 발간했다고 밝혔다. 사진 위는 손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구회장./경제부 기사참조/경제/2001.5.6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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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빈소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빈소 서울 시내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빈소. 2019.12.15 LG그룹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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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그룹 2대 회장으로 1970년부터 1995년까지 25년간 그룹을 이끌었던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14일 오전 10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1925년생인 구 명예회장은 LG 창업주인 고(故) 구인회 회장의 장남으로 45세 때인 1970년부터 LG그룹 2대 회장을 지냈다.

진주사범을 졸업한 고인은 부산 사범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50년 부친의 부름을 받아 그룹의 모회사인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 이사로 취임하면서 그룹 경영에 참여했다.

1969년 구인회 창업회장의 별세에 따라 구 명예회장은 1970년 LG그룹 회장을 맡아 25년간 그룹 총수를 지냈다. 1987∼1989년 사이에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도 역임했다.
검정 뿔테안경에 경상도 사투리가 트레이드 마크인 구 명예회장은 안정과 내실을 중시하는 경영스타일로 유명했다.

고인이 이끌던 LG는 ‘보수적인 기업’의 대명사로 불렸고, 대기업의 부침이 심했던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도 특혜나 이권과 관련해 잡음을 일으킨 사례가 거의 없는 편으로 전해진다.
1970년 회장으로 취임할 당시 그룹은 럭키와 금성사, 호남정유 등 8개사에 연간 매출이 270억원이었다.

취임 이후 한국경제의 고도성장기 때 범한해상화재보험과 국제증권, 부산투자금융, 한국중공업 군포공장, 한국광업제련 등을 인수했고 럭키석유화학(1978년), 금성반도체(1979년), 금성일렉트론(1989년) 등을 설립하는 등 외형을 불렸다.

구 명예회장은 70세이던 1995년 ‘21세기를 위해서는 젊고 도전적인 인재들이 그룹을 이끌어나가야 한다’며 장남 고(故) 구본무 회장에게 그룹을 넘겨줬다.

고인이 경영에서 물러날 당시 LG는 30여개 계열사에 매출액 38조원의 재계 3위 그룹으로 성장했다.

구 명예회장은 그룹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키고자 연구개발을 통한 신기술 확보에 주력해 회장 재임 기간에 설립한 국내외 연구소만 70여개에 이른다.

해외 진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중국과 동남아시아, 동유럽, 미주 지역에 LG전자와 LG화학의 해외공장 건설을 추진해 그룹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특히 구 명예회장은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의 권한을 이양하고 이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게 하는 ‘자율경영체제’를 그룹에 확립했다.

고인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는 교육 활동과 공익재단을 통한 사회공헌활동에 관여해 왔다.
또한, 충남 천안에 있는 천안연암대학 인근 농장에 머물면서 된장과 청국장, 만두 등 전통음식의 맛을 재현하는 데 힘을 쏟았다.

구 명예회장은 슬하에 지난해 타계한 구본무 LG 회장과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 부회장,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 등 6남매를 뒀다. 부인 하정임 여사는 2008년 1월 별세했다.

LG 2대 경영인 구자경 명예회장의 빈소는 작년 구본무 회장 별세 때와 마찬가지로 간소하게 치러졌고 장례식 이틀째인 15일 정·재계 주요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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