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울수록 번지리라”… 세계 37개도시 ‘연대의 날갯짓’

기민도 기자
업데이트 2019-08-14 18:55
입력 2019-08-14 18:08

12개국도 함께 “日, 위안부 사과하라”

국내 13개 도시 남녀노소 수만명 참가
종이 노란나비 티셔츠·가방에다 붙여
길원옥 할머니 “싸워 승리하자” 격려
성범죄생존자들 “함께한다” 지지 영상


도쿄·나고야·교토 등지서도 공개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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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하루 전이자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인 14일 세계 12개국 37개 도시에서 일본 정부의 사죄 등을 촉구하는 연대 집회가 열렸다. 8월 14일은 고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공개 증언한 날이다.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가 이날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400차 수요시위에 참석해 다른 참가자들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있다.
서울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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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대사는 늙은이 말 똑똑히 들으세요. 이 늙은이들 다 죽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죽기 전에 사과하고….”(올해 1월 별세한 김복동 할머니)

“나라고 생각하고 다시 한번 얼마나 아프면 저러는지 생각해 주면 좋겠다.”(길원옥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두 할머니가 수요시위에서 했던 외침들은 전시 일본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는 기폭제가 됐다. 1992년 1월 시작돼 매주 수요일마다 열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14일 정오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1400번째 열렸다. 이날은 ‘제7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이기도 했다. “죽기 전에 사과하라”는 김복동 할머니의 바람이 끝내 이뤄지지 않았기에 1400번째 수요시위에서도 참가자들은 일본 정부가 전쟁 범죄를 인정하고 위안부 동원을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35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도 수요시위에는 2만여명(주최 측 추산)이 참여해 할머니 곁을 지켰다. 노란 나비 모양의 종이를 티셔츠와 가방 등에 붙인 참가자들은 “끝까지 함께 싸웁시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일본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죄하라”고 외쳤다. 이날 수요시위에 참석한 길원옥(91) 할머니는 “더운데 많이 오셔서 감사합니다. 끝까지 싸워서 이기는 게 승리하는 사람”이라며 참가자들을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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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대만의 타이베이에서 열린 위안부 기림일 연대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얼굴이 새겨진 피켓 등을 들고 일본 정부의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타이베이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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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에스테리타 바스바뇨 디(왼쪽), 나르시사 클라베리아(오른쪽) 할머니도 이날 마닐라의 대통령궁 인근에서 열린 연대 시위에 참여했다.
마닐라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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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3개 도시뿐 아니라 일본, 미국, 대만, 호주 등 세계 12개국 37개 도시에서도 1400번째 날갯짓을 함께했다. 한일 갈등이 깊어지고 있음에도 일본 시민사회는 도쿄, 나고야, 교토 등에서 집회를 열고 1991년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했던 고 김학순 할머니를 기렸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수요시위가 이제는 대한민국을 넘어 일본과 세계 각국으로 확대됐다”며 “위안부 할머니들이 알려준 평화와 인권의 정신에 세계 시민들이 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필리핀, 대만, 북이라크, 짐바브웨, 콜롬비아, 미국, 우간다, 일본 등에서 보내온 연대의 메시지도 수요시위 현장에서 영상을 통해 공개됐다. 대만 타이베이 여성구제재단은 “대만에는 이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두 분만 남았다”며 “정의 실현을 위해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이행할 때까지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세계 성범죄 생존자들의 목소리도 현장에서 울려 퍼졌다. 내전 중 성범죄 피해를 당한 타티아나 무카니레(콩고민주공화국)는 “할머니를 만나 제가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이야기를 하면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이날 시위에서는 학생들의 자유발언도 이어졌다. 광주 신가중학교 학생회 학생들은 “중학생인 저희도 잘못하면 제일 먼저 진심 어린 사과를 하라고 배웠다”면서 “(일본은) 미래를 이끌어 갈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느냐”고 일갈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2019-08-15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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