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 前회장도 12년째 해외 잠적… 체포된 정한근 “작년에 아버지 사망”

나상현 기자
업데이트 2019-06-24 00:38
입력 2019-06-23 22:52

2007년 항소심 앞두고 치료위해 일본행

키르기스스탄 거주說… 생사도 불분명
정 前회장 사망 여부 객관적 증거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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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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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해외 도피 중이던 정한근 전 한보그룹 부회장이 국내로 송환되면서 다른 사건으로 역시 해외 도피 중인 그의 아버지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행방도 주목받고 있다. 정 전 회장은 12년 전 치료 목적으로 일본으로 출국한 뒤 행적이 묘연한 상태다.

23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 예세민)는 정 전 부회장을 상대로 도피 경로와 일가의 재산 은닉 여부, 그리고 정 전 회장의 생존 여부 및 행적 등을 추궁하고 있다. 지난 22일 국내 송환 뒤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정 전 부회장은 이날 하루 휴식을 취하고 24일부터 다시 조사받을 예정이다.

IMF 금융위기의 서막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한보 사태는 1997년 1월 재계 14위 한보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한보철강이 부도나며 시작됐다. 당시 한보그룹이 5조 7000억원대 규모의 부실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정치계·금융계를 상대로 로비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회 국정조사와 검찰 수사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인 ‘소통령’ 김현철씨가 구속되기도 했다. 정 전 회장은 같은 해 6월 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으나 5년 만인 2002년 10월 대장암 진단을 받으면서 형 집행정지로 석방됐고 곧 특별사면됐다.

그러나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강릉영동대 교비 72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또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항소심을 앞두고 있던 정 전 회장은 2007년 치료 목적으로 일본으로 출국한 후 잠적했다. 당시 정 전 회장은 세금 체납으로 출국금지 조치된 상태였으나 ‘지병 악화’를 이유로 제기한 출국금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이겨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이와 관련, 정 전 회장의 변호인은 피고인 없는 항소심 법정에 출석해 “고령의 피고인이 이미 다른 사건으로 오랫동안 수감 생활을 했고 교비 횡령 사건에서도 실형을 받아 복역 중에 세상을 뜰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돌아오지 않는 것 같다”며 “가족들로부터 현재 카자흐스탄에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법원은 궐석 재판을 진행해 2009년 정 전 회장에게 3년 6개월의 징역형을 확정했다.

대검 국제협력단(단장 손영배)은 이번 주 중 정 전 회장의 행방을 둘러싼 기록 검토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정 전 회장은 일본과 카자흐스탄을 거쳐 키르기스스탄으로 옮겨갔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을 뿐 생사 여부조차 불분명하다. 법무부는 2009년 키르기스스탄 당국에 범죄인 인도를 요청한 상태다. 아들 정 전 부회장은 전날 검찰 조사에서 “아버지가 지난해 사망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검찰은 허위 진술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객관적 증거를 바탕으로 생사 여부를 판단할 계획이다.

정 전 회장의 소재가 확인돼 국내로 송환되면 우선 교비 횡령 사건 관련 3년 6개월 징역형의 집행부터 이뤄질 전망이다. 횡령한 교비를 해외 도피 자금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추가 수사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정 전 부회장에 대해선 11년간 미뤄졌던 횡령 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나아가 밀항, 신분세탁 등 도피 과정에서 발생한 여죄에 대한 추가 기소도 뒤따를 전망이다. 이들 부자가 각각 2127억원과 253억원의 국세를 체납한 상태인 만큼 환수 절차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2019-06-24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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