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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인 1979년 8월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YH무역에 노조가 만들어지자 사주는 이내 공장을 폐쇄했다. 이른바 ‘YH 여공’들은 몇 달 동안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하지만 권력도, 법도 노조 편이 아니었다. 벼랑 끝 노동자들은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의 상도동 집을 찾아가 호소했고, 김 총재는 다음날 오전 기꺼이 당사를 내준 뒤 어린 여성 노동자들 앞에서 명연설을 남겼다.
“신민당사를 찾아 준 것을 눈물겹게 생각합니다. 신민당은 억울하고 약한 사람의 편에 서서 끝까지 투쟁할 것입니다.”
결과는 알고 있는 대로다. 박정희 정권은 사흘 뒤 새벽 야당에 공권력을 투입, 강제 진압했고 노동자 1명이 숨졌다. 국회는 품위 손상을 이유로 김 총재를 제명했고, 신민당 의원 전원은 의원직 사퇴서 제출로 맞섰다. 10월 부마항쟁 불씨는 그렇게 지펴졌고, 유신 정권은 곧 막을 내렸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몇 해 동안 이를 방관했다. 지난 연말에 국가인권위원회가 농성장을 방문하면서 새 국면이 됐다. 더불어민주당도 노사와 함께 네 차례 협상을 진행했다. 아쉽게도 뾰족한 진척을 이루지 못했다. 박홍근 민주당 을지로위원장은 8일 “지난 3일 13시간에 걸친 4차 협상 때 극적 해결의 가능성을 봤지만, 결국 노사 간 상호 불신의 벽과 인식의 간극이 너무도 큼을 재확인했다”면서 “중재 가능성이 거의 안 보일 정도로 막막하지만 어떻게든 답을 찾아보겠다”고 상황의 엄중함을 호소했다.
대립과 갈등, 이해관계의 조정은 정치의 핵심 기능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나서서 노사 양측을 적극 설득해 타협의 장에 나서도록 강제해야 한다.
youngtan@seoul.co.kr
2019-01-09 3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