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을 넘어, 진정한 포용국가로… 100년 전, 임정이 꿈꾸던 나라

‘임시정부 설계자’ 김구·안창호·조소앙이 본 2019 대한민국, 그리고 새로운 100년

올해는 3·1운동 발발 100주년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기념비적인 해다. 우리가 ‘나라다운 나라’를 건설하고자 매진하게 된 데에는 조국을 위해 자신을 내던진 선조들의 숭고한 희생 덕분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들이 100년 전 세운 ‘임시정부’라는 씨앗이 굴곡의 세월을 견디고 뿌리를 내려 ‘100살 대한민국’으로 성장했다. 임정의 두 거인인 김구(1876~1949)와 안창호(1878~1938), 그리고 임정의 국가건설론인 건국강령(1941년)의 기초를 짠 조소앙(1887~1958) 등이 살아 온다면 2019년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평가할까. 또 우리는 ‘새로운 대한민국 100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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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초기, 국가 개입 최소화한 자유주의 꿈꿔

임정 인사들이 꿈꿔 온 대한민국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확인하려면 무엇보다 이들이 직접 만든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법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 살피는 것이 최선이다. 거기에는 ‘오래된 미래’처럼 미래 한국의 지향점도 함께 담겨 있다.

임시정부 헌법은 1919년 4월 11일 상하이정부 출범 당시 제정된 임시헌장(1차 헌법)을 시작으로 해방 직전인 1944년 4월 22일 충칭청사에서 개정된 임시헌장(6차 헌법)에 이르기까지 모두 6번에 걸쳐 제·개정이 이뤄졌다.

일반적으로 임시정부는 1917년 ‘2월 혁명’ 뒤 러시아·폴란드에 세워졌던 것처럼 짧은 시간 안에 정식정부를 세우고 사라지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 민족 역시 1919년 3·1운동 직후 임정을 세운 뒤 단시일 내에 새 정부를 출범시키고 해체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임정 요인들은 파리강화회의(1919년)와 워싱턴 군축회의(1920년), 모스크바 극동인민대표회의(1921년) 등을 지켜보며 1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일본에서 독립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잔인한 현실’을 깨달았다. 한국 임정은 당초 예상과 달리 27년을 버티며 일본의 패망을 기다렸다. 이들은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언젠가 한반도에 들어설 새 나라의 이상을 헌법에 하나씩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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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에 제정된 1차 헌법은 내용이 너무 간략해 선언적 수준에 머문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이 가야 할 방향성을 잘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임정은 민주공화제와 대의제를 채택하고 평등권과 자유권, 참정권을 인민의 기본권으로 규정했다. ‘소유의 자유’를 명시해 자본주의 체제를 도입하고 생명형(사형)과 신체형(태형)을 폐지해 인도주의 원리도 명시했다. 다만 이때는 교육이 권리가 아닌 의무로 규정됐고 국가가 사적 영역에 개입하는 것도 최소화했다. ‘야경국가’로 불리는 자유주의 국가 모델을 염두해 둔 것으로 보인다. “조선 황실을 우대한다”는 조항도 있어 당시 임정이 구(舊)체제와 완벽히 결별하지는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시간이 흘러 1941년 일본이 미국을 공격하며 태평양전쟁이 시작됐다. 1차대전 승전국인 두 나라가 서로에게 총을 겨눴다. 오래지 않아 두 나라 간 전력 차가 드러났고 일본이 몇 년 안에 패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임정 관계자들은 정식정부 수립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좀더 정교하고 구체적으로 민족국가의 밑그림을 그릴 때가 왔다. 1944년 6차 헌법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1943년 카이로 선언(미·영·중이 일본 문제 논의)으로 조선 독립을 국제적으로 보장받은 시기에 만들어져 상징성이 크다. 1941년 임정이 조선민족혁명당과의 합작을 앞두고 좌우를 아우르고자 내놓은 건국강령의 영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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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조소앙이 삼균주의에 따라 독립운동과 건국 방침을 국한문 혼용으로 적은 친필 문서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
문화재청 제공

주석(대통령) 중심제를 기본으로 하되 의원내각제도 가미한 절충적 정부를 구성했다. 교육과 직장, 노약자 부양을 요구할 권리를 명시하고 파업권도 보장했다. 전문에는 “‘진보의 기본정신’에 입각해 헌법을 제정했다”고 밝혔다. 전형적인 사회민주주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임정은 설립 초기인 1919년만 해도 순수자유주의에 기초한 ‘작은 정부’를 내세웠다. 하지만 해방 직전인 1944년에는 수정자본주의를 토대로 한 ‘큰 정부’로 바뀌어 있었다. 이는 세계 대공황(1929~1933년)을 통해 제어되지 않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경험했고, 1942년 조선민족혁명당 김원봉(1898~1958) 등이 임정에 가담하면서 진보 이념을 대거 수용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들의 생각대로 정식정부가 수립됐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스웨덴이나 독일 같은 사민주의 복지국가를 추구하고 있을 것이다. 조석곤 상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31일 “1948년 대한민국 제헌헌법은 건국강령의 경제조항을 계승하고 있다. 그것은 장기간에 걸친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당시 임정 요인들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교육을 통한 실력양성’을 주장한 안창호는 한국이 세계 12대 경제대국이자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 달러까지 성장한 모습에 그 누구보다 뿌듯해할 것 같다.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교육열에도 혀를 내두를 것이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밝힌 김구는 ‘방탄소년단’ 등 글로벌 대중문화를 이끄는 한류스타들의 활약이 너무도 반가울 듯싶다. ‘사민주의자’ 조소앙은 최근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포용국가 전략을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들은 1945년 해방이 지금까지도 진정한 의미의 광복으로 이어지지 못한 점에 실망할 수밖에 없다. 한국이 식민 지배에 이어 전쟁, 군사독재라는 험난한 길을 걸어온 것에도 가슴 아파할 것이다. 무엇보다 남북분단 상황이 고착화되고 친일잔재 청산이 이뤄지지 않은 현실을 개탄하리라.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앞으로 100년을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할까.

무엇보다 남북 관계 개선을 통한 통일 무드 조성이 중요하다. 이에 대해 한상진 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한민국은 상하이 임정에서 법통을 찾지만 북한은 항일무장투쟁에서 뿌리를 찾는다. 각자의 정당성으로 통일 문제를 풀려면 쉽지 않다”며 “우리와 북한이 공유할 수 있는 개념은 (임정보다는) 광복”이라는 견해를 내놨다.

김구가 강조한 혈통적 민족 개념에 대한 발전적 계승도 필요하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G2 시대’에 민족주의는 그 의미를 상실하지 않은 정치적 기획”이라면서도 “그렇다고 민족주의에 내재된 권위주의와 인종주의까지 인정해서는 안 된다. 민족과 세계시민 사이의 상반된 정체성을 어떻게 공존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새로운 100년으로 가는 대한민국의 과제”라고 설명했다.

신도시나 공공시설에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붙이고 이들을 화폐 모델로도 내세워 ‘임정 법통을 이어받은 민주공화정’의 정체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의 1달러 지폐 모델은 영국과의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조지 워싱턴(1732~1799) 초대 대통령이다. 수도인 워싱턴DC와 이곳에 자리잡은 조지워싱턴대 역시 그의 이름에서 따왔다. 프랑스 파리의 ‘샤를드골 공항’이나 이스라엘 예루살렘 ‘벤구리온 공항’ 역시 독립 영웅을 기리고자 명명됐다.

김상회 전 국민대(정치학) 교수는 “화폐란 국가의 얼굴이고 여기에 들어가는 문양과 인물은 나라의 정체성이자 지향점”이라며 “(5만원권 모델이) 왜 유관순이 아니라 신사임당이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김구나 안중근, 안창호 대신 조선의 유학자들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이자 지향점이 돼야 하는지도 석연치 않다”고 지적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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