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총탄 맞고도 의연한 백범…“소생 가망성 없다” 했는데도

신성은 기자
업데이트 2018-12-14 14:51
입력 2018-12-14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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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오른쪽 첫번째)이 1938년 ‘남목청사건’ 때 일제 밀정의 총탄을 맞고 수술을 받은 후 중국 장사 상아병원에서 의료진과 촬영한 기념사진. 남목청사건은 1938년 5월 7일 독립운동 세력의 3당 합당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연회에서 조선혁명당원 이운환이 권총을 난사해 김구가 크게 다치고 현익철이 사망한 일을 말한다. 2018.12.14
부산시립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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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생할 가망이 없어 보이자 의사들은 응급처치도 하지 않은 채 문간방에 놓아두고 장남 인과 안공근에게 사망 소식을 알리는 전보를 쳤다. 그러나 4시간이 지나도 백범이 살아 있자 의사들이 백범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1938년 ‘남목청사건’ 때 일제 밀정이 쏜 총탄을 가슴에 맞은 백범 김구 선생을 설명한 백범일지 한 부분이다. 남목청사건은 1938년 5월 7일 독립운동 세력의 3당 합당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연회에서 조선혁명당원 이운환이 권총을 난사해 김구 선생이 크게 다치고 현익철이 사망한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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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1949년 6월 26일 안두희의 총탄을 맞고 숨을 거둔 백범 김구 선생의 마지막 모습.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제공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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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건국대학교가 10일 공개한 백범 김구 선생의 조선정치학관(건국대의 전신) 개교 3주년 기념식 축사 모습. 이 행사는 김구 선생의 서거 전 마지막 공식 행사로 알려져 있다. 김구 선생 바로 오른편에 앉아있는 인물이 건국대 설립자인 상허 유석창 박사. 2016.5.10 [ 건국대학교 제공 ]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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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총탄 맞고도 의연한 백범
가슴에 총탄 맞고도 의연한 백범 백범 김구 선생(오른쪽 첫번째)이 1938년 ‘남목청사건’ 때 일제 밀정의 총탄을 맞고 수술을 받은 후 중국 장사 상아병원에서 의료진과 촬영한 기념사진. 남목청사건은 1938년 5월 7일 독립운동 세력의 3당 합당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연회에서 조선혁명당원 이운환이 권총을 난사해 김구가 크게 다치고 현익철이 사망한 일을 말한다. 2018.12.14 [부산시립박물관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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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1945년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결정된 신탁통치 반대 집회에서 연설하는 백범(가운데)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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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면학동지회 회원과 함께 찍은사진. 앞줄 왼쪽에서 두번째는 이희호여사의 학생때모습.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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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남북협상을 위해 1948년4월19일 평양으로 가는 길에 38선에 선 김구선생 오른쪽은 아들 김신장군. 왼쪽은 당시 비서였던 선우진 백범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 상무이사.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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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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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백범 선생과 큰아들 김인 선생과 함께 한 최준례 여사 생전의 모습.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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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오른쪽 첫번째)이 1938년 ‘남목청사건’ 때 일제 밀정의 총탄을 맞고 수술을 받은 후 중국 장사 상아병원에서 의료진과 촬영한 기념사진. 남목청사건은 1938년 5월 7일 독립운동 세력의 3당 합당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연회에서 조선혁명당원 이운환이 권총을 난사해 김구가 크게 다치고 현익철이 사망한 일을 말한다. 2018.12.14
부산시립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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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1940년 9월 17일 중화민국의 임시수도 충칭(中慶)의 가릉빈관에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전례식 후 임시정부 김구 주석(右)과 이청천(李靑天.본명池靑天)광복군 총사령관이 기념촬영한 모습. 사진은 백범 차남 김 신(金信) 장군의 개인소장 사진자료집에서 발견된 것으로 12일 임시정부 수립 80돌을 맞아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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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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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한국인 최초의 천주교 교구장인 노기남(왼쪽 네번째) 대주교가 초대 교황사절인 빈 주교의 주교서품식 뒤 명동성당에서 열린 축하연에 참석해 김구(왼쪽 두번째) 선생등과 함께 찍은 사진.천주교 서울대교구가 노 대주교의 탄신 100주년을 맞아 펴낸 화보집 ‘노기남’에는 한국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미공개 사진 460여컷이 실렸다.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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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노기남 대주교 주교 수품식 사진, 김 구 선생의 모습이 눈에 띈다./ 한국교회연구사 제공/문화/ 2003.3.23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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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미군정기 한국 정치를 움직인 3인. 왼쪽부터 이승만 박사,김구 선생,하지 중장.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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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上海 홍구공원 거사’ 직전의 김구와 윤봉길 -- 윤봉길 의사가 상해 홍구공원 거사 직전 한인애국단장 김구와 함께 태극기 앞에서 마지막 사진을 찍었다. <백범기념관 제공>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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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1934년 중국 상하이에서 찍은 백범 김구 선생의 가족 사진. 앉아있는 이가 백범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 왼쪽부터 백범의 맏아들 인, 백범, 둘째아들 신.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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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김일성 주석과 백범 김구 선생이 1948년 4월 22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 회의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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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1932년 중국 다롄(大連)에서 국제연맹 조사단이 보는 앞에서 관동군 총사령관 등을 폭살하려다 실패한 유상근(윗줄 가운데).최흥식(윗줄 왼쪽) 의사. 의거를 앞두고 백범 김구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백범김구기념관 제공.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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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1875년 운요호 사건에서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 일제의 한국침탈과 그에 맞선 한국인들의 저항을 다룬 ‘사진으로 엮은 한국독립운동사’에 실린 사진.김원봉의 조선의용대에 편입된 한국여성 (아래)과 장제스가 주최한 임시정부 귀국 환송행사장의 김구 주석.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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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반민특위 위원장을 지낸 김상덕 선생의 외아들 김정육(72)씨가 친일 인명사전 편찬사업 등을 펴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에 최근 기증한 사진. 앞줄 맨 오른쪽이 김상덕 선생, 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김구 선생, 셋째 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장준하 선생./2007-02-28 15:19:55.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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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서울 남산에 있는 백범 김구선생 동상.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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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평화 수업’으로 유명한 난징(南京)의 난징사범대 부속 중학교(한국의 고등학교에 해당)는 111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학교다. 중국의 대문호 바진(巴金), 벼 품종을 개량해 중국 식량난 해소에 기여한 농학자 위안룽핑(袁隆平) 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김구 선생의 아들 김신 등 독립운동가 자제 10명도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이 학교에 다녔다고 한다. 사진은 학교 내 기념관에 전시된 김구 선생과 두 아들 사진(오른쪽이 김신, 왼쪽이 김인). 2013.2.24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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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경찰청이 내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앞두고 임시정부 경찰과 관련한 자료 수집·연구 등 각종 기념사업을 추진한다고 12일 전했다. 사진은 경찰청이 공개한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 시절 김구 모습. 경무국은 오늘날의 경찰청에 해당하는 기관으로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이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과 함께 초대 경무국장을 맡았다. 2018.8.12 [경찰청 제공]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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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은 총탄을 맞은 중태로 중국 장사 상아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고, 기적적으로 살아나 훗날 임시정부 주석으로 선출되기에 이른다.

피격 이후 김구 선생 모습은 백범일지 등 글로만 알려져 왔을 뿐 사진 자료는 공개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최근 부산시립박물관이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인 서영해(徐嶺海·1902∼1949 실종) 선생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김구 선생이 가슴의 총탄 자국을 드러내 보이며 의연하게 앉아있는 사진을 발견했다.

이해련 부산시립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검은 총탄 자국이 선명한 선생이 정면을 바라보는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설명했다. 이 사진은 서 선생이 생전에 갖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서 선생은 100여 년 전 임시정부 파리특파위원으로 활동하며 프랑스에서 책을 여러 권 펴내고 언론에 활발히 기고하며 일제 침략의 부당함을 알린 독립운동가다.

그는 1929년 프랑스 파리에 고려통신사라는 언론사를 설립한 언론인이기도 했다.

김구 선생 사진을 포함한 서 선생 유품 200여점은 부인 황순조 전 경남여고 교장이 보관하다가 황 전 교장이 1985년에 작고하면서 류영남 전 부산한글학회 회장이 관리해왔다.

이후 유품은 경남여고 역사관에 전시될 예정이었으나 올해 초에 부산시립박물관으로 오게 됐다.

류 전 회장은 “학교 역사 자료를 전시할 경남여고 역사관보다는 부산시립박물관이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부산시립박물관은 내년 초에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을 마련해 김구 선생 사진 등을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라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부산시립박물관 제공·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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