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펄 끓는 ‘100℃ 온수 폭탄’… 한파 속 난방대란까지 불렀다

김헌주 기자
김헌주 기자
업데이트 2018-12-05 18:01
입력 2018-12-05 18:00

고양 백석동 온수 배관 터져 밤새 혼란

“불난 줄 알고 맨발로 나오다 양발 데여”
딸·예비사위 만나고 귀가하던 60대 사망
2861가구 온수·난방 중단에 벌벌 떨어


완전복구까지 일주일가량 더 걸릴 듯
경찰, 난방공사 하청 직원들 과실 조사
이미지 확대
5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역 인근 온수 배관 파열 사고 현장에서 한국지역난방공사 관계자들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전날 오후 8시 40분쯤 지름 50㎝ 크기의 온수 배관에 구멍이 뚫리면서 100도 이상의 끓는 물이 지반을 뚫고 나와 주변을 덮쳤다. 이 때문에 1명이 숨지고 41명이 화상 피해를 입었다. 복구 작업은 일주일가량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
“앗 뜨거워!” “살려 주세요!”

올해 첫 한파주의보가 발령된 지난 4일 오후 8시 40분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에서 지하에 매립된 온수 배관이 터지면서 주변 일대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2.5m 높이의 지반을 뚫고 10m가량 솟구쳐 오른 섭씨 100도의 끓는 물은 하얀 수증기를 만들어 내며 순식간에 주변을 덮쳤다. 사고 현장 맞은편에서 슈퍼마켓을 운영 중인 이모(62)씨는 5일 “20대 청년이 벌겋게 익은 두 발로 들어와서 차가운 생수를 달라고 하더니 발에 막 붓더라”면서 “부족했는지 한 번 더 와서 생수를 사 갔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꽃집 주인 변모(63)씨는 “물이 차오르는데 금세 대로변 도로 3차선까지 넘실댔다”면서 “펄펄 끓는 물에 꼼짝없이 양발을 덴 시민 중에는 발바닥이 벗겨지면서 피가 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인근 건물 내에 있던 입주민들은 연기가 주변을 가득 메우자 불이 난 줄 알고 맨발로 급하게 뛰쳐나오다 오히려 더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4층 마사지숍에서 일하는 외국인 여성들은 대피방송을 듣고 1층까지 내려왔다가 화상을 입고 단체로 병원에 실려 간 것으로 전해졌다. 입주민을 대피시키던 경비원 정모(68)씨도 오른발에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 갔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전날 사고로 1명이 사망하고, 25명이 중·경상을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고양시는 개인 차량을 통해 병원을 찾은 시민들까지 포함하면 부상자는 41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사고 현장에서 숨진 손모(69)씨는 내년 4월 결혼을 앞둔 둘째 딸과 예비 사위와 함께 백석역 인근에서 저녁 식사를 한 뒤 혼자 차를 타고 귀가하던 중 갑자기 치솟은 물기둥에 변을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고 발생 약 2시간 만에 발견된 손씨 차량은 앞유리 대부분이 깨져 있었다. 손씨는 전신에 화상을 입은 채 뒷좌석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5일 일산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손씨의 유족은 “평소 고인의 왼쪽 다리가 불편하긴 했다”면서도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누구라도 못빠져 나왔을 것”이라고 울먹였다. 부상자 대부분은 1도 화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손모(39)씨와 이모(48)씨는 각각 발바닥에 3도, 2도 화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온수 배관 파열로 5일 오전 7시 55분까지 약 10시간 동안 인근 아파트 단지 2861가구에 난방과 온수 공급이 중단돼 시민들은 밤새 추위에 떨었다. 백석동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60대 여성은 “갓 돌이 지난 손녀딸을 냉골에 재우는데 마음이 아파 혼났다”면서 “전기장판을 준다고 했는데 우리는 못 받았다”고 속상해했다. 복구 작업을 지켜보던 한국지역난방공사 관계자는 “갑자기 추워지면서 수압을 2~3㎏/㎠가량 높였는데 배관이 노후화돼 압력을 못 견딘 것 같다”면서 “복구까지는 일주일가량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고양시는 “보상보험에 가입돼 있다”면서 합당하고 빠른 피해 보상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과학수사 요원을 투입해 파손된 배관 상태와 구멍 크기 등을 살피고, 지역난방공사와 하청업체 직원들을 불러 조사했다. 과실이 드러나면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입건한다는 방침이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2018-12-06 10면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120년 역사의 서울신문 회원이 되시겠어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