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비자금 관리하는 안 실장”… 수억원 속절없이 뜯겼다

김헌주 기자
김헌주 기자
업데이트 2018-11-20 18:51
입력 2018-11-20 17:40

“6조원대 금괴 풀리면 5000억 대출” 미끼

60대 사업가, 靑사칭 사기 5억여원 피해

“원금이라도 돌려받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욕심이 화를 불렀습니다.”

지난해 9월 사업가 안모(64)씨는 지인 소개로 만난 윤모(65·무직)씨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충남 홍성에 문재인 정부의 6조원대 비자금이 금괴 형태로 보관돼 있는데, 이 비자금이 풀리면 5000억원을 거의 조건 없이 빌려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윤씨는 “나는 원래 보석 장사를 했고, 동생은 미국 국무부 재무 담당 이사”라고 소개했다. 골프장 매입 등 사업 자금으로 마침 거액이 필요했던 안씨는 귀가 솔깃했다.

이후 윤씨는 자주 안씨에게 접근해 휴대전화에 저장된 금괴와 달러 뭉치 사진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비자금이 풀리려면 미 국무부 승인이 필요한데, 동생이 비자금 분배 작업을 맡고 있어 문제없을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윤씨는 처음 5000억원에서 3000억원, 2000억원, 1000억원으로 대출 금액을 점점 줄여 나갔지만 안씨는 사기 행각을 눈치 채지 못했다. 안씨는 “당장 필요한 사업자금만 융통하면 된다는 생각에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느 날 윤씨는 로비, 접대 명목으로 “5억 5000만원이 필요하다”며 돈을 요구했다. ‘청와대 안 실장’이라는 비자금 관리자에게 5억원을 주면 청와대에서 은행을 통해 1조원어치 비자금을 현금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5000만원은 승인 권한을 지닌 미국 관계자 접대에 쓴다고 했다. 안씨는 사업 자금 융통에 대한 기대감에 지난 4월 돈을 건넸다.

돈을 챙긴 윤씨는 이후 “정부 승인이 안 났다.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렇게 6개월이 흐른 지난달 안씨는 청와대 사칭 사기가 잇따르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고서야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조사 결과, 윤씨는 사문서 위조, 관세법 위반 혐의 등으로 두 차례 구속된 전력이 있었다. 경찰은 그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혐의로 구속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 관계자는 “청와대 비자금을 사칭한 전형적인 사기”라면서 “유사 피해를 입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2018-11-21 12면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120년 역사의 서울신문 회원이 되시겠어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