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28% 희귀 아이템 뽑기…자율에 맡길까, 법으로 막을까

‘확률형 아이템’ 개선 방안 찾기

국내 모바일게임 시장 1위인 엔씨소프트의 ‘리니지M’에서 ‘고급 드래곤의 다이아몬드 상자’를 구입했을 때 가장 높은 등급인 ‘전설’ 아이템 중 하나인 ‘제로스의 지팡이’를 뽑을 확률은 0.00028%다. 넥슨이 서비스하는 축구 게임 ‘피파온라인4’에서 ‘골드 선수팩’을 구매했을 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메시, 네이마르가 나올 확률은 0.00577934%, 노이어와 수아레즈가 나올 확률은 0.03467607%이다. 게임업계는 보편적인 수익 모델이자 게임의 재미 요소 중 하나로 이 같은 ‘아이템 뽑기’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용자들은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을 써도 원하는 아이템이 나오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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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게임사와 규제당국, 정치권 사이에 공방이 끊이지 않고 있는 ‘확률형 아이템’이 또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사진은 엔씨소프트의 모바일게임 ‘리니지M’.

돈을 내고 구매하지만 어떤 아이템이 나올지는 확률에 따라 결정되는, 일종의 ‘뽑기’처럼 아이템을 구매하는 확률형 아이템은 수년간 게임사와 이용자, 규제당국과 정치권 사이에 공방이 오간 뜨거운 감자다.

최근 확률형 아이템을 둘러싸고 정치권과 게임업계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될 때까지 간다”(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며 확률형 아이템 규제를 벼르고 있는 국회에 게임업계는 “자율규제 노력을 인정해 달라”며 읍소하고 있다. 오는 18일에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회사 설립 21년 만에 처음으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질문 공세를 받게 됐다.

‘캡슐형 아이템’ ‘랜덤박스’ ‘가챠’ 등으로 불리는 확률형 아이템은 전 세계 게임업계의 대표적인 수익 모델이다. 온라인게임 시장이 열리던 2000년대에 국내 게임업계는 게임을 무료로 즐기게 하는 대신 일부 아이템에 과금을 매기는 ‘부분 유료화’ 방식을 도입했다. 특히 캐릭터의 능력치를 높여주는 아이템 구매에 뽑기라는 게임 요소를 적용한 확률형 아이템이 자리잡게 됐다. 모바일게임 시장이 팽창하면서 확률형 아이템은 더욱 보편화됐지만 그만큼 논란도 커졌다. ‘리니지2:레볼루션’(넷마블) ‘리니지M’ 등이 전례 없는 매출을 올리는 동안 인터넷 1인 방송과 커뮤니티 등에서 “희귀 아이템을 뽑기 위해 수백만원을 썼다”는 경험담이 확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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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17 지스타’ 넥슨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피파온라인4’ 시연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신문 DB

정치권이 ‘사행성’ ‘도박’ 이라며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자 게임업계는 한국게임산업협회와 게임이용자보호센터가 주축이 된 자율규제로 대응했다. 2008년 온라인게임을 시작으로 실시한 자율규제를 2015년 모바일게임으로 확대해 어떤 아이템을 어느 정도의 확률로 뽑을 수 있는지 등 명확한 정보를 이용자에게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 7월 65%(전체 114개 게임)였던 자율규제 준수율은 지난 6월 88.3%(전체 128개 게임)로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지난 7월부터는 모든 확률형 아이템의 개별 확률을 공개하고, 이용자가 아이템을 구매하는 화면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도록 규제가 강화됐다.

그러나 게임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돈을 쓰지 않거나 적게 써서는 ‘전설’ 캐릭터가 될 수 없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좋은 아이템을 뽑을 확률이 지나치게 낮아 돈을 적게 쓰는 이용자들의 박탈감을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민원이 쏟아지자 20대 국회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을 규제하는 법안이 3건 발의됐다. 아이템의 확률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은 게임에 과태료를 물리고 신고자에게 포상금을 지급하거나, 획득 확률이 10% 이하인 아이템을 판매하는 게임은 ‘청소년 이용 불가’로 분류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반면 게임업계는 입법을 통한 규제가 아닌 업계의 자율규제에 맡겨달라는 입장이다. 한국게임산업협회 관계자는 “트렌드와 기술의 변화가 빠른 게임산업을 법으로 규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법을 통한 규제는 입법예고와 공청회, 타당성 검토 등 도입까지 긴 시간이 소요되지만 자율규제는 업계 스스로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정’ ‘개선’ 등을 외치는 게임업계의 한켠에서는 다소 억울한 속내도 읽힌다. 성인 이용자가 게임을 즐기기 위해 돈을 지출하는 것은 개인의 영역으로, 아이템 구매에 수십~수백만원을 쏟아붓는 이른바 ‘헤비 유저’에 대한 게임업계의 책임이 어디까지인지 반문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8년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 알고 있는 모바일게임 이용자 1086명 중 확률형 아이템을 구매한 경험이 있는 이들은 22.3%(242명)였으며 이들의 평균 지출액은 3만 3920원이었다. 10만원 이상 지출했다는 응답은 10.1%로 나타났다. 게임의 수익은 돈을 쓰지 않거나 적게 쓰는 이용자 대부분을 소수의 ‘헤비 유저’가 떠받드는 구조다. 인터넷 1인 방송 진행자가 수천만원을 들여 아이템 뽑기에 나서는 모습을 방송하거나 “1000만원을 현질(게임에 현금을 투자)해 아이템을 뽑았다”는 소수 이용자들의 경험이 확대재생산돼 한탕주의를 조장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자율규제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은 게임업계의 과제다. 자율규제가 시행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준수율은 여전히 100%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온라인게임은 100%인 반면 모바일은 81.7%였고, 국내 게임사의 94.0%와 협회 회원사의 100%가 준수하는 반면 해외 게임사 및 협회 비회원사의 준수율은 각각 77.3%, 63.4%에 그쳤다. 국내에 지사가 없는 해외 게임사나 중소 및 인디 게임사는 규제의 구속력이 없거나 규제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이들 게임사가 주로 모바일게임을 출시하고 있어 모바일게임의 준수율이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 자율규제 미준수 게임에 대한 제재가 ‘게임 및 게임사 명단 공개’ 뿐이라는 것도 규제의 실효성을 낮춘다는 지적이다.

근본적으로는 확률형 아이템이 아닌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는 자성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이라는 수익 모델이 천편일률적인 게임을 양산한다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 때문에 캐릭터의 능력치를 끌어올리는 게 아닌 다른 재미 요소에 수익 모델을 적용한 게임으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오는 11월 게임업계와 전문가들을 아우르는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가 출범해 활동을 시작한다. 한국게임산업협회 관계자는 “게임업계와 학계가 머리를 맞대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의 개선 방향 등을 마련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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