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유산 톡톡] 모더니즘 소설가와 신여성의 결혼 이상·정지용 기상천외 축하 방명록

업데이트 2018-08-15 18:32
입력 2018-08-15 17:44
1934년 10월 24일 모더니즘 소설가 박태원과 신여성 김정애의 결혼식은 식민지 조선과 경성 문화계의 일대 사건이요 화제였다. 하객의 명단을 보면 이상, 이무영, 이태준, 김기림, 정지용, 조용만, 조벽암, 김상용 등 구인회 동인과 김진섭, 안석영, 안회남, 유엽, 이석훈, 이하윤, 정인택 등 작가들의 이름이 보인다. 화가로는 김규택, 윤희순, 이승만 등이 축하 휘호를 남겼다.

양장본 형태의 스케치북이 결혼식 방명록을 대신했는데 하객 30명 전원이 기상천외한 축하 글과 그림을 남겼다. 문학평론가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는 당대 문단, 경성 문화계의 풍속을 보여 주는 특별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유족들이 기증한 자료를 모아 ‘구보 결혼’이라는 소장유물자료집을 펴냈다.

방명록의 첫 페이지는 절친 시인 이상이 장식했다. 이상은 ‘면회사절 반대 이상(以上)/결혼은 곧 만화에 틀림없고/ 만화의 실연(實演)에 틀림없다/만화실연의 진지미(眞摯美)는 또다시 만화로-윤회한다’라는 5줄짜리 글을 적었다. ‘以上’(이상의 필명 중 하나)은 만화처럼 결혼하는 구보가 자신을 만나 주지 않을 것을 반대한다는 내용이다. 함께 월북한 경성제일고보 동기 정인택도 휘호를 남겼는데, 그의 미망인은 북한에서 구보와 재혼한 권영희이다. 그녀는 실명한 구보의 구술에 의지해 박태원의 후기 대표작 ‘갑오농민전쟁’을 완성했다.

방명록에서 정지용은 ‘太和(태화)/꽃 피였으니/열매 맺고/뿌리는 다시/깊히!/지용’이라는 시를 바쳤다. 이태준은 ‘1+1=1’이라는 수식을 적은 뒤 봉숭아를 한 개 그려 놓았다.

박태원의 결혼식은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를 발표한 지 한 달 만에 전격적으로 성사됐다. 어머니 남양 홍씨의 소원을 이뤄 준 셈이다. 양가 모두 한약방을 운영하는 넉넉한 집안답게 전통혼례와 신식을 절충한 시끌벅적한 잔치였다. 서울미래유산연구팀

2018-08-1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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