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나 사무실’서 고통받는 공무원

수정: 2018.08.07 01:59

‘냉방 설정 온도 28도 이상 유지’ 경직된 규정 탓 폭염에도 찜통근무

서울청사 냉방 9시간… 폭염땐 30분 연장
PC 열기에 30도 훌쩍… 개인 선풍기 의존
주말엔 냉방 안 돼 당직자 40도 견뎌야
전기 낭비 초래… 에너지 효율 정책 역행
“더위가 공무원 피해 가나” 현실화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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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마다 선풍기 진풍경
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의 한 사무실에서 공무원들이 28도 이상으로 맞춰야 하는 냉방시설 온도 규정 탓에 폭염에도 불구하고 개인용 선풍기로 더위를 식히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국내 기상관측 114년 만에 최악의 폭염이 이어지자 이낙연 국무총리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긴급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이들과 일하는 공무원들은 경직된 규정에 갇혀 찜통 같은 사무실에서 무더위에 고통받고 있다. 고령자·임신부 공무원들을 위해서라도 냉방온도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행안부에 따르면 올해 정부서울청사의 냉방공급 기간은 6월부터 9월까지 4개월이다. 냉방시설 가동 기준 온도는 26도인데, 냉방시설 설정 온도는 ‘공공기관 에너지이용합리화 추진에 대한 규정’에 따라 28도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어린이집이나 민원실 등 일부 시설은 예외를 적용해 24도 이상으로 관리한다.

냉방 시간은 평일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9시간인데 새벽에도 30도가 넘는 현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폭염 때 냉방 시간을 하루 30분 정도 연장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대응책도 없다. 특히 주말에는 냉방을 제공하지 않아 당직 근무자가 40도에 달하는 폭염을 맨몸으로 견뎌야 한다. 다른 청사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냉방시설 설정 온도가 28도 이상으로 정해져 있다 보니 PC나 노트북, TV 등 전자제품에서 나오는 열이 더해지면 사무실 온도는 30도를 훌쩍 넘긴다. 실제로 서울청사 내 사무실에 들어가면 습식 사우나에 들어온 것처럼 후텁지근한 열기가 느껴진다. 냉방 온도를 낮추면 간단히 해결되지만 에너지이용합리화 규정에 가로막혀 인위적인 조작이 불가능하다. 결국 공무원들은 궁여지책으로 개인용 선풍기를 구입해 사용한다. 사무실에는 냉방기와 별도로 수십대의 선풍기가 함께 돌아가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선풍기 모터 열로 인해 사무실이 더욱 더워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전기를 아끼려고 만든 규정이 되레 전기 낭비를 초래하는 비효율을 만들어 내는 셈이다.

경기 파주에 사는 주민 안모(45)씨는 “며칠 전 동네 행복센터(주민센터)에 갔더니 공무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선풍기를 한 대씩 옆에 두고 돌리고 있었다”면서 “기후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규정을 눈 가리고 아웅식으로 지키기보다는 차라리 심야 냉방시설을 갖춰 값싼 전기로 냉방 시간을 늘리고 냉방 온도도 낮추는 게 현실적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행안부 한 공무원은 “몇 년 전에는 전력이 모자란다고 청사에서 PC 이외의 전원을 모두 다 내리고 일하게 한 적도 있었다”면서 “더위가 공무원이라고 피해 가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 이제 장관이나 차관이 나서서 결단해 줘야 한다”고 토로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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