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바다의 무법자’로 등장한 중국 어선

김규환 기자
업데이트 2018-06-23 13:33
입력 2018-06-22 17:40
이미지 확대
중국 어선들이 불법조업은 물론 타국 어선들을 공격해 어획물을 강탈하는 ‘바다의 무법자’로 등장했다. 사진은 불법 조업에 나선 중국어선들이 쇠사슬로 선체를 서로 묶고 한국 해경 단속에 저항하고 있는 모습. 서울신문 DB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
지난 18일 오전 11시쯤 남중국해 파라셀 군도(중국명 시사(西沙)군도, 베트남명 호앙사 군도)에서는 강풍과 높은 파도가 일고 있었다. 악천후를 만난 베트남 어선 20척은 서둘러 조업을 포기하고 암초로 대피했다. 베트남 어선에는 어부 100여 명이 타고 있었다. 하지만 느닷없이 나타난 대형 중국 어선들의 위협에 혼비백산한 베트남 어선들은 곧바로 물러났다. 베트남 어선들은 베트남 재난대응수색구조위원회에 급히 도움을 요청했고 베트남 당국은 중국 측에 현지 상황을 설명하고 구조 지원을 당부했으나 끝내 허사였다. 지난 5월에도 많은 중국 어선들이 해양경비대를 대동하고 베트남 중남부 리 선 섬으로부터 불과 40 해리(약 74㎞) 떨어진 해역에서 조업했으며 수십 척의 중국 선단이 베트남 어선들을 쫓아낸 경우도 수차례 있었다.

중국 어선들이 ‘바다의 무법자’로 등장했다. 중국 어선들은 우리 서해를 비롯해 가까이로는 동중국해·남중국해, 멀리는 인도양과 아프리카, 남미 해역까지 진출해 세계 어장을 독식하는 것은 물론 다른 나라 어선들을 공격하는 일도 서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어민은 2000만명이 넘고 동력 어선만 해도 70만척에 이르는 엄청난 숫적 우세를 바탕으로 전 세계 바다에서 무람없이 횡포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이 전 세계 어장에서 오징어를 남획하는 바람에 자원 고갈, 가격 급등, 수익성 악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오징어 어선들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자국 연안은 물론 세계 각국의 인근 공해로 나아가 공격적인 조업을 하고 있다. 이들은 멀리 아르헨티나 인근 공해까지 가서 긴 줄에 낚시를 여러 개 달아 낚는 전통적인 오징어 조업과 달리 그물로 한꺼번에 대량으로 잡는 싹쓸이 조업을 하고 있다고 SCMP가 전했다. 속초에서 오징어잡이를 하는 박정귀씨는 “중국 어선들이 첨단장비로 바다 바닥을 긁어내듯 오징어 싹쓸이를 하면서 낡은 등에 의존해 오징어잡이를 하는 한국 어선들은 중국의 15%밖에 잡지 못하고 있다”며 “수입이 60%나 급감해 배 연료비용도 안 나올 지경”이라고 말했다.

일본과 동남아 국가들과 영유권 분쟁 중인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일대에서는 이들은 ‘해상 민병’으로 불리며 군사훈련까지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어선 위에 살수장치를 장착하고 다른 나라 어선이나 선박이 분쟁해역 내에 들어오면 쫓아내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은 1970년대 중반부터 영유권 분쟁지역뿐 아니라 우리 서해상에서도 해상민병을 활용 중이다. 더군다나 해양강국 건설을 모토로 하는 중국 정부는 어업을 더욱 강화시키기 위해 불법 조업 단속에는 미온적이다. 환경단체 그린피스에 따르면 서아프리카에서 중국 깃발을 단 선박은 1985년 13척에서 2013년 462척으로 30배 이상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8년 동안에 걸쳐 잠비아, 기니, 모리타니아, 세네갈, 시에라리온 인근 해안에서 적발된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은 114건으로 집계됐다. 이 어선들은 이 부근 바다를 현지 어업 허가권 없이 수시로 들락거렸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구촌은 오징어를 연평균 270만t 가량 소비하고 있다. 중국은 전 세계 오징어 어선의 50~70%를 보유하고 오징어 어획량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오징어는 1년 정도밖에 살지 못하는 특성상 군집의 크기와 위치 추적이 쉽지 않아 관련 정보 확보가 중요하다. 중국 정부는 인공위성과 정부 소유 탐사선을 통해 오징어 군집의 성장과 이동에 대한 정보를 대량 수집해 자국 오징어 어선에 알려준다. 중국 어선들의 오징어잡이 추적 정확도가 90%에 이르는 것도 이 덕분이다. 중국이 막대한 정부 지원을 통해 모니터링 능력에서 다른 국가들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거액의 예산을 들여 어선 대형화를 지원하고 연료 보조금을 대주는 등 중국 정부는 각종 인센티브도 제공하고 있다. 이 같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중국 어선과는 달리 ‘각자도생’(各自圖生)해야 하는 다른 나라 어선들이 이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중국의 한 전문가는 “해양대국으로 부상하려는 중국 정부는 전 세계 바다에서 다른 나라의 해군력에 맞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길 원한다”며 “오징어 조업은 이를 위한 하나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중국이 오징어 등 어족 자원은 물론 원유, 광물 등 다른 천연자원을 탐사하고 채굴하는 과정에서 유사한 전략을 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지 확대
쇠창살(빨간 원 안)과 철망을 설치하고 불범조업에 나선 중국 어선.서울신문 DB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중국 오징어 어선이 몰려드는 바람에 지난해 한국의 오징어 어획량은 2003년보다 48% 감소했으며 그 여파로 오징어 가격은 40% 이상 폭등했다. 같은 기간 일본은 더 큰 피해를 입어 어획량이 무려 73% 곤두박질쳤다. 대만도 중국 오징어 어선의 조업으로 인해 어획량 급감과 가격 급등의 고통을 겪고 있지만, 중국 오징어잡이 정보력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항의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중국에서 오징어를 수입하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도 가격 급등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품질이 좋은 오징어는 중국 내에서 소비되는 바람에 이들 나라의 수입 오징어 질이 자꾸만 떨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이 중국이 근시안적인 싹쓸이 조업 행태를 그만두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지속 가능한 어업’을 추구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중국해양대 톈융쥔 교수는 “원양 어업의 역사가 중국보다 훨씬 긴 서구 국가들은 어업은 물론 어족 자원의 보존에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다”며 “중국이 진정한 해양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이들을 본받아 지속 가능한 어업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과 베트남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남중국해에서는 중국 대형 어선들이 베트남 어선을 잇따라 공격하는 바람에 베트남 정부와 어민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베트남 어업협회는 지난 4월 파라셀 군도의 링컨 섬 근처에서 중국 대형 어선 2척의 공격을 받고 침몰한 베트남 어선에서 어부 6명이 구조됐다고 밝혔다. 중국 어선들이 베트남 어선을 쫓아와 들이받았고 이후 무장 괴한들이 베트남 어선에 올라 어구와 어획물을 강탈하기도 했다. 중국 어선들이 레이저 공격을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 과학기술 잡지 파퓰러 메카닉에 따르면 중국이 어선을 훈련시키고 선원들에게 보급품을 지원하고 있다, 이 어선들은 중국 군 당국의 눈과 귀 역할을 담당하면서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해역을 드나들고 있다”며 “해상민병 역할을 하는 이들 어선이 레이저를 이용해 저공 비행하는 미국 정찰기 등을 공격하고 있다”고 파퓰러 메카닉이 전했다.

때문에 피해 당사국들은 어선 나포, 벌금 부과, 선원 재판 회부 등으로 갖가지 방법으로 대응하고 일부 국가는 총격과 전투기 출동 같은 무력 대응도 불사하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인도네시아 해군은 2016년 나투나 제도 앞바다에서 중국 어선이 불법 조업을 하자 구축함을 파견해 승무원 8명을 억류했다. 이 과정에서 조업 중단 명령을 거부하는 중국 어선에 발포까지 했다. 인도네시아는 불법 조업을 단속하기 위해 나투나 제도에 F-16 전투기 5대를 배치하기로 했다.

필리핀 해안경비대도 같은 해 바부얀 해협에서 필리핀 국기를 달고 불법 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 2척을 나포했다. 필리핀은 어획물을 압수하고 선원 25명을 억류했다. 아르헨티나 해군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1460km 떨어진 푸에르토 마드린 연안에서 불법 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에 발포해 침몰시켰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중국 어선 3척을 불법 조업과 배타적경제수역(EEZ) 무단 침입 혐의로 억류하기도 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120년 역사의 서울신문 회원이 되시겠어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