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 체크] 10층서 떨어진 1.5kg 아령, 75kg 충격의 ‘묻지마 흉기’

한상봉 기자
한상봉 기자
업데이트 2018-05-26 14:53
입력 2018-05-25 23:00

잇따른 아파트 투척사고… 이대로 괜찮은가

2015년 10월 경기 용인에서 50대 여성이 길고양이 집을 만들다 초등학생이 아파트 옥상에서 던진 벽돌에 맞아 숨졌다. 지난해 12월 경기 의정부에서는 고층에서 떨어진 얼음덩어리에 맞아 네 살배기 아이가 응급실로 실려 갔었다. 가장 최근인 지난 19일 낮 12시 50분쯤엔 경기 평택 아파트 10층에서 떨어진 1.5㎏짜리 아령에 주차하고 내리던 입주민 A(50·여)씨가 어깨와 등을 맞아 어깨뼈 골절이라는 중상을 입었다. 이튿날엔 충남 천안 한 아파트 단지에서 30㎝ 길이 부엌칼이 느닷없이 아래로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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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경기 용인 ‘캣맘 사망사건’ 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궤적과 낙하 속도에 따른 충격력을 측정하기 위해 벽돌을 고층(60m)에서 투척한 현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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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편리와 안전을 앞세워 우리나라 대표적 주거공간으로 자리잡은 아파트에서 지내는 입주민들이 이른바 ‘투척 공포’에 떨고 있다. 이번 평택 사건 가해자도 어린이로 추정된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사람을 해치더라도 처벌할 수 없는 ‘범법소년’ 또는 ‘촉법소년’에 해당한다. 이를 두고 “고의성 죄질을 고려해 벌을 줘야 한다”, “아파트를 지을 때부터 투척이 불가능한 설계를 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는 등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과연 14세 이하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지, 이번 아령 투척사건을 계기로 효과적인 예방책은 무엇인지 전문가 조언으로 따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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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아령 투척사건 범인은?

아직 단정하지 못하고 있다. 차량 뒷좌석에는 어린이도 타고 있어 자칫 더 큰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폐쇄회로(CC)TV 분석을 바탕으로 이 아파트 10층 B씨 집을 투척 장소로 지목했다.

경찰이 초인종을 누르자, 집 주인은 분홍빛 고무로 마감된 아령이 초등학교 1학년 자신의 딸 C(7)양 것임을 곧장 인정했다. 그러나 C양은 25일 현재 사람을 다치게 한 아령이 자신의 것은 맞지만, 일부러 던지지는 않았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당시 집 안에 있던 부모는 잠을 자고 있던 터라 목격자도 없는 상황이다. C양은 “창가에 아령을 다른 물건들과 같이 올려놓았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밑으로 떨어진 것 같다”고 진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C양이 심리적 충격을 받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더이상 수사를 진척시키지 못하는 처지다. 이래저래 ‘가해자 없는 피해자’ 측만 답답하다. 경찰 관계자는 “C양의 충격도 커서 여경을 투입해 부모님과 시간을 갖고 정확한 사건 경위를 파악할 것”이라고 밝혔다.

●형사처벌 면제받는 소년 매년 1만 명

그동안 모든 투척사고를 일으킨 가해자를 밝혀냈지만 대부분 14세 미만 어린이여서 형사적 처벌을 받지 않았다. C양 역시 아령을 고의로 던졌다고 해도 만 10세 미만 ‘범법소년’에 해당돼 아무런 형사적 처벌을 받지 않는다.

현재 국내에선 만 10세 미만은 ‘범법소년’으로 분류해 형법과 소년법을 모두 적용할 수 없다. 만 10세 이상 14세 이하는 ‘촉법소년’으로 분류돼 형사적 처벌을 하지 않도록 했다. 2년 전 용인에서 발생한 ‘캣맘 벽돌 사망사건’의 가해자 역시 촉법소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범죄가 흐려지면 재범을 낳을 우려가 있다”며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촉법소년으로 분류돼 형사처벌을 면제받는 소년이 매년 1만명을 웃돈다는 통계도 있어 걱정을 더한다.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민사적 책임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를 감독할 법적 의무가 있는 가해 어린이들의 부모 등 보호자는 치료비, 위자료 등 일체의 민사상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고층서 떨어진 물건의 수십배 ‘중력가속도’

2016년 1월 충북 청주에서 11세 2명이 15층 높이 아파트 옥상에서 낙하실험을 한다며 물풍선을 아래로 던져 고급승용차 뒷유리가 산산조각 나기도 했다. 같은 해 10월엔 경기 의왕 아파트 21층에서 어린이 3명이 지상으로 던진 감자 한 알이 주차장에 있던 BMW 승용차 지붕을 파손시켰다.

김성원 이화여대 사범대 과학교육과(물리 전공) 교수는 “아파트 10층 높이에서 떨어진 1.5㎏짜리 아령이 준 충격력은 물체 무게의 50배인 약 75㎏에 이르렀을 것”이라며 “특히 실제처럼 옷에 스쳐 맞은 게 아니라, 머리 및 뼈 등 몸체에 직접 맞았더라면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아파트 고층에서 자유낙하하는 물건의 속도는 엄청난 중력가속도 때문에 아무리 작은 물건이라도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흉기로 돌변할 수 있다”며 “건축설계 단계부터 투척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2018-05-26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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