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5’ 노동시간 단축 정부 지원책…탄력근로제 등 논란 예고

김태이 기자
업데이트 2018-05-17 13:50
입력 2018-05-17 13:50

“탄력근로 단위기간 3개월∼1년은 돼야” vs “장시간 근로 일상화할 것”

정부가 17일 노동시간 단축 대책을 내놨지만, 이 가운데 일부 방안은 시행 과정에서 노사 간 쟁점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가 사회복지서비스업, 연구개발업, 방송업 등 ‘특례제외 업종’에서 활용하려고 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대표적 사례다.

특례제외 업종은 과거 노동시간 특례업종에 속해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됐으나 지난 3월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특례업종에서 제외된 21개 업종을 가리킨다.

주 최대 52시간 노동을 규정한 개정 근로기준법은 특례업종을 26개에서 5개로 대폭 축소했다. 특례업종으로 남은 육상운송·수상운송·항공운송·기타운송서비스·보건업 등 5개 업종의 경우 주 52시간 노동 대신 11시간 연속 휴식시간 보장이 의무화됐다.

특례제외 업종은 300인 이상 기업일 경우 내년 7월 1일부터 주 최대 52시간 노동의 적용 대상이 된다.

이들 업종에서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가 고려하고 있는 게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포함한 유연 근로시간제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특정 근로일의 노동시간을 늘리면 다른 근로일의 노동시간을 줄여 일정 기간(2주 또는 3개월) 평균 노동시간을 법정 한도에 맞추는 방식이다.

특례제외 업종 중에는 집중적인 노동이 필요한 업종이 많은데 주 최대 52시간 노동을 기계적으로 적용할 경우 초래할 수 있는 혼란을 탄력적 근로시간제로 완화할 수 있다.

국내 산업 현장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활용도는 3.4%에 불과하지만, 노동시간 단축이 시행되면 높아질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그러나 기업은 탄력적 근로시간제 실효성을 높이려면 단위 기간을 3개월에서 1년 정도로 늘려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노동계는 단위 기간을 늘리면 장시간 노동이 다시 일상화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 16일 일자리위원회에 참석해 노동시간 단축이 우선인 상황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 활용을 장려하는 것은 본말전도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기업이 탄력적 근로시간제 활용 방법을 몰라 노동시간 단축을 규정한 법을 위반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게 더 큰 문제”라며 “이를 막기 위해 합법적인 제도를 활용하는 길을 정부가 안내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선버스업을 비롯해 특례제외 업종에 속하는 일부 업종에서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력 공백 등이 발생할 가능성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노선버스업의 경우 오는 7월 1일부터 주 최대 68시간 노동이 적용되는데 면허·교육 등 진입 장벽으로 즉각적인 인력 충원이 힘든 구조다.

이에 따라 버스 기사가 하루 근무하고 하루 휴무하는 ‘격일제’와 2∼4일 근무하고 1∼2일 쉬는 ‘복격일제’로부터 1일 2교대제 등으로 전환하는 것도 불가피하다고 정부는 보고 있다.

노선버스업의 노동시간 단축 시행을 앞두고 조속히 대책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버스 대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정부는 “올해 7월까지 현재 운송 수준이 저하되지 않도록 유연 근로시간제를 활용하도록 지도하고 운수 종사자 양성·공급 방안 등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준공영제 등 노선버스업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단계적으로 제도를 도입하는 절차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검토 필요성을 인정했다.

그는 “준공영제를 서울특별시, 6대 광역시, 제주도 등에서 시행하는 형태로 (다른 지역에) 바로 적용할지는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노선버스업 외에도 건설업, 사회복지서비스업, 정보통신기술(ICT) 서비스업, 콘텐츠·방송업, 하수·폐수·분뇨처리업 등에서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인한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정부는 이들 업종의 특수성을 고려한 맞춤형 대책을 마련 중이다. 사회복지서비스업의 경우 장애인 돌봄 서비스를 하는 노동자의 휴식시간 보장을 위해 교대근무, 대체인력 지원, 가족에 의한 활동 보조 허용 등의 방안이 추진된다.

잦은 집중 근무로 주 52시간 초과 사례가 발생하기 쉬운 콘텐츠·방송업의 경우 노동 환경 실태조사를 거쳐 노동시간 단축 적용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방안 등이 대책에 포함됐다. 그러나 이들 대책의 실효성은 여전히 미지수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평균 임금이 낮아져 노동자의 퇴직급여액이 줄어들면 정부가 이를 퇴직금 중간정산 사유로 인정하기로 한 것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퇴직급여액은 직전 3개월 평균 임금을 기준으로 결정되는데 퇴직급여액이 줄어드는 노동자의 퇴직금 중간정산이 속출하면 노후 보장을 위해 중간정산을 제한하는 기존 정책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가능하다.

정부는 “중간정산을 하더라도 노동자가 정산금을 사용하기보다 개인형 퇴직연금제도(IRP)에 적립·운영하도록 함으로써 중간정산으로 인해 노후소득재원 확보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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