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현희 기자의 맛있는 맥주 이야기] 치맥 지겹다면 ‘순맥’ ‘홍맥’ 어때요

심현희 기자
업데이트 2018-05-05 01:28
입력 2018-05-04 17:30

맥주와 ‘꿀조합’ 자랑하는 음식

맥주와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은 무엇일까요. 물론 사람의 입맛이 주관적이라 딱 떨어지는 정답은 없을 테지만, 아마 열에 여덟아홉은 “치킨”이라고 답할 겁니다. 치킨과 맥주를 합친 ‘치맥’은 이젠 한국인의 솔푸드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실제로 시원한 라거 맥주는 청량감이 뛰어나고 깔끔해 프라이드치킨의 느끼함을 잘 잡아 주는 역할을 합니다. 비슷한 이치로 치즈를 듬뿍 얹은 피자와 바삭하게 튀긴 군만두도 라거 맥주의 훌륭한 짝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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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p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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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단지 튀긴 음식이나 느끼한 요리만이 맥주와 환상적인 궁합을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맥주가 라거 맥주는 아니니까요. 맥주도 음식처럼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의 향과 맛을 내뿜기 때문에 스타일에 따라 어울리는 음식도 제각각입니다. 특히 최근 크래프트 맥주 열풍이 불면서 맥주와 함께 즐기는 음식 또한 기존의 ‘치맥’, ‘피맥’(피자+맥주) 등을 벗어난 다양한 결합(페어링)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맥주와 잘 어울리는 의외의 음식, 무엇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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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페일에일=기름기 싹

대표적인 것이 ‘순대’입니다. 돼지 창자 속에 고기나 각종 채소, 당면 등을 넣어 삶아 만드는 순대는 묵직하고 영양가 높은 훌륭한 음식이지만 계속 먹다 보면 고기 냄새와 기름진 맛에 질릴 때가 있습니다. 이런 순대에 특히 잘 어울리는 맥주가 바로 미국식 페일에일입니다. 페일에일은 에일 맥주의 일반적인 스타일로, 약한 불에 구운 맥아를 에일 방식(높은 온도에서 활동하는 효모를 넣는 식)으로 발효시킨 맥주를 뜻합니다. 그 중 미국식 페일에일은 맥주의 쓴맛과 향에 관여하는 홉의 특성이 강하게 나타나는데요. 홉의 쌉쌀함과 향미가 순대와 어우러져 느끼한 맛을 깔끔하게 정리해 줍니다. 순대는 페일에일보다 홉이 더 많이 들어간 인디안페일에일(IPA)과 먹어도 맛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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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사워에일=설탕 맛?

푹 삭힌 홍어와 사워에일 맥주는 예상치 못한 맛을 선사합니다. 홍어는 특유의 암모니아 향과 시큼하고 쿰쿰한 느낌 때문에 취향이 갈리는 음식이지만, 홍어와 맥주를 좋아한다면 ‘홍어+사워에일’ 조합은 꼭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각각의 음식에서는 날 수 없는 맛이 입 안에서 합쳐지면서 새로운 맛을 내기 때문입니다. 사워에일은 야생 효모를 넣거나 젖산 발효를 통해 맥주를 만든 뒤 수개월에서 수년간 숙성을 거친 맥주로, 화이트와인보다 더 강한 산미를 갖고 있습니다. 음식에 비유한다면 묵은지 김치 같은 것이죠.

신기한 건 시큼한 홍어와 사워에일을 함께 먹으면 혀에서 설탕보다 더 달콤한 맛으로 변한다는 겁니다. 다만 사워에일 맥주와 홍어를 먹을 때는 홍어만 단독으로 즐기는 게 좋습니다. 사워에일이 워낙 강해서 삼합으로 먹으면 돼지고기 맛이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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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식=브라우니+흑맥주

디저트용 맥주 조합으로 브라우니와 스타우트 맥주를 추천합니다. 강한 불에 구워 어두운 색이 된 맥아를 에일 방식으로 양조하는 스타우트 맥주는 주로 다크초콜릿과 커피 향이 나는데요. 초콜릿 맛이 진한 브라우니와 함께 먹으면 초콜릿이 증폭돼 궁극의 ‘카카오 세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브라우니가 없다면 초콜릿 쿠키로 대체해도 괜찮습니다. 스타우트는 브라우니뿐만 아니라 불고기, 떡갈비, 산적 등 한국의 간장 양념 베이스 음식과도 아주 잘 어울립니다. 디저트뿐만 아니라 식사할 때도 스타우트 맥주를 적극 활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치맥’만이 진리가 아니듯 맥주에 어울리는 음식을 고르는 일에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다음 두 가지 페어링 원칙을 기억한다면 맥주뿐만 아니라 술과 어울리는 음식을 찾는 것이 한결 수월해질 겁니다. 첫째는 서로의 맛을 잡아 줄 수 있는 조합입니다. 순대와 페일에일 맥주, 치킨과 라거 맥주는 각각 상반된 맛으로 구성한 겁니다. 음식의 느끼함을 각각의 쌉싸름한 맛과 청량감으로 잡아 주는 식입니다. 이런 페어링은 맥주와 음식이 물리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두 번째는 서로의 맛을 증폭시킬 수 있는 조합입니다. 홍어, 블루치즈와 사워맥주, 스타우트와 브라우니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비슷한 맛이 입안에서 합쳐져 해당 맛의 진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맥주와 어울리는 나만의 ‘솔푸드’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macduck@seoul.co.kr
2018-05-05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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