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대북 정책 역사의 교훈과 과제/이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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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

평창동계올림픽이 북한과 대화를 트는 데 절묘한 계기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의 제의를 받아들여 5월 안에 북ㆍ미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외신들도 이를 획기적인 진전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물론 정치적으로는 큰 행보가 되겠지만 “악마는 세부적인 내용에 숨어 있다”는 금언처럼 핵 폐기 검증 과정은 그리 간단치 않을 것이다. 이제까지의 대북 정책과 협상 경험이 남긴 다음과 같은 교훈도 새로운 과제를 일깨워 준다.

우선 한국에는 한반도의 긴장과 대립보다는 평화와 대화 구도가 유리하다는 것이 자명해졌다. 이것은 좌우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이다. 북한은 긴장을 연출할수록 독재를 강화할 수 있고, 북한과 미국, 중국과 일본의 목소리는 커진다. 한국의 역할은 작아진다.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긴장에 편승한다. 반면 평화와 대화 구도는 북한의 광기를 약화시키고, 주변국들의 경제적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우리의 대북 정책은 주변 강대국들의 이익을 감안하는 포괄적인 외교 과제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미국과는 사전 사후 긴밀한 공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현실의 교훈도 있다. “한국의 중심적인 역할”이나 “민족자주성 원칙”은 우리가 선언하거나 미국이 용인한다고 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1994년의 북ㆍ미 제네바 합의 이래 모든 협상이 미국이나 북한의 뜻에 따라 진행되고 중단됐다. 또한 북ㆍ미 대화가 일단 시작되면 한국은 찬밥이 되고 한국의 주도적 역할은 “필요한 경제적 비용은 한국이 부담”하는 결과가 되곤 했다.

따라서 대북 정책과 외교 정책은 국제적ㆍ보편적 가치와 기준을 존중하며 연계돼 추진돼야 한다. 고립된 대북 정책의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우리가 이미 충분히 경험했다. 북한의 핵과 대륙 간탄도탄이 미국에까지 위협이 되고 유엔안보리와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가 시행되고 있는 현 상황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남북 대화만 별도로 추진하기도 어려워졌다.

대북 정책이 국내 정치적 갈등을 초래하지 말아야 한다. 효과적이고 권위 있는 대북 정책은 국내 합의를 필요로 한다. 국회의 지지가 뒷받침될 때 그 정책은 더 강력한 권위를 부여받는다. 3월 7일의 청와대 회동과 같은 정부, 여야 협의는 정례화는 물론 제도화돼야 한다. 극단적인 관료주의로 소통이 경직된 북한 체제를 감안해 세심하게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다. 북한이 급할 때는 유화적인 태도로 한국에 접근하다가도 갑자기 돌변해 도발하는 것은 일상화된 행태다. 일희일비하지 말고 언제나 신중히 대응해야 한다.

상대방의 입장도 존중해야 한다. 경수로 프로젝트 실패의 교훈을 보자. 필자는 1990년대 말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북한 현지 대표였는데 송배전망이나 전기에너지 효율화를 위한 산업설비 투자 없이 “거저 캥하니 경수로 건설만 해서 오캅네까”라는 북한 관리들의 푸념을 아직도 기억한다. 초기 정지작업 물량이 하루 5000㎥로 제한된 것도 북한의 의심을 샀다. 경수로나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사업이 까딱하면 정치 문제화되고 중단된 것은 종합계획 없이 제각기 추진됐기 때문이다. 북한 경제 지원은 먼저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우선순위별로 연계된 사업으로 추진해야 한다.

당분간 동북아 정세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이는 더욱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한국의 대북 정책이 남북 관계 개선과 이에 대한 국내 정치적 합의, 한ㆍ미 동맹 관계 발전, 그리고 주변국들의 이해 존중 등 모든 이해 당사자들의 이익을 동시에 충족시켜야 함을 의미한다. 한국이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계속하면서 동시에 비핵화 협상의 숨통을 트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관료들은 이를 위한 연계된 로드맵과 이행 방안, 국제 지원 프로그램을 미리 만들어 놓아야 한다.

“준비는 하되 비핵화 조건이 충족돼야 이행한다”는 원칙하에 남북 관계 및 북ㆍ미 관계의 제도화를 포함한 구체적인 정치경제적 유인책을 미국, 중국과 미리 합의하고 그 내용과 논의 과정을 직간접적으로 북한에 보여 주어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한국에 가능한 ‘운전석’ 역할이다.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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